‘정민태 파문’의 전후맥락을 보면 어딘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 KBO 이사회가 정민태의 일본 진출을 막는 근거로 쓴 KBO 규정이 문제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최소한 일곱 시즌을 뛰어야만 해외 진출을 허용한다는 문제의 규정은 금년 1월에 만들어진 것이다.
정민태가 프로야구에 뛰어든 것은 무려 7년 전이니 이것은 일종의 소급입법이다. 현대 구단은 이 규정이 생기기 전인 작년 12월 그의 해외 진출을 적극 돕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연 이래도 되는 것인가.
부당한 소급 적용 말고도 문제는 더 있다. 이 규정을 통해 KBO는 ‘수요자 카르텔’을 형성함으로써 시장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고 선수의 권리를 짓밟고 있다.
공정거래법은 주로 공급자의 카르텔을 겨냥한 것이기 때문에 이런 유형의 카르텔을 명시적으로 금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공정거래법의 정신에 비추어 보면 ‘부당한 공동행위’로서 명백한 불법행위다. 이 법 제19조는 ‘계약 협정 결의 기타 어떠한 방법이든 사업자들이 의사의 합치를 통해 상품과 용역의 제공 등 일정한 거래분야의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공동행위’를 위법으로 규정한다.
KBO 규정은 야구선수 시장의 ‘몸값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한다. 프로 선수는 육체적 절정기에 있는 몇 년 동안 평생을 사는 데 필요한 돈을 모아야 한다. 국내든 해외든 돈을 많이 주는 데로 가는 것이 당연하다. 만약 좋은 선수를 오래 잡아두고 싶다면 그에 상응하는 높은 연봉에 장기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계약기간이 끝난 뒤 재계약을 하든 다른 고용주를 찾든 그건 선수 개개인이 결정할 문제다. 일단 국내 프로야구단에 들어오면 7년을 채우기 전에는 마음대로 팀을 옮기거나 해외로 나갈 수 없도록 한 KBO 규정는 ‘몸값 경쟁’을 제한함으로써 좋은 선수를 헐값에 잡아두는 것을 목적으로 한 구단주들의 공개적 담합의 산물이다.
KBO의 속사정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정민태를 내보낼 경우 자칫하면 해외진출 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 우선 국내 정상급 투수인 한화 구대성(30)도 이미 여섯 시즌을 뛴 만큼 나가겠다면 말릴 수가 없다. 그러다 보면 선동렬 이종범 박찬호 등 스타들의 해외진출로 흥행에 어려움을 겪다가 홈런왕 이승엽의 등장으로 겨우 활기를 되찾은 프로야구에 다시 찬물을 끼얹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내 프로야구 중흥이라는 ‘사업자들의 공동이익’이 아무리 중요하다 할지라도 선수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짓밟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정민태는 곧 운동선수로서는 ‘환갑’이라고 할 30세가 된다. 파란 많은 야구인생을 걸었던 그는 “족쇄를 풀어달라”고 간절히 호소했다. 아마추어 시절 부동의 국가대표 에이스로서, 그리고 갖가지 부상을 극복하고 정상에 오른 6년의 세월 동안 한국 야구 발전에 기여할 만큼 한 선수의 절규를 외면해 버리는 ‘냉혹한 프로야구’가 나는 싫다.
유시민〈시사평론가〉denkmal@hitel.net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