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개기업의 전체 이사 중 약 80%가 사외이사이다. 지난 몇 년간 기업지배개혁 논의가 한창인 일본에서도 사외취체역(取締役), 즉 이사회에서 사외이사가 차지하는 비율을 높이고 있다.
사외이사의 수가 는다고 질이 높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설령 이사진의 100%가 사외이사로 이루어졌더라도 이사회가 ‘행동 않는’ 무용의 기관으로 남아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외이사의 본고장인 미국에도 과반수가 사외이사로 구성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주로부터 수탁(受託)받은 경영집행 감독 기능을 전혀 하지 않는 이사회가 수두룩하다.
이렇게 이사회가 무기력한 원인은 이사와 경영자의 친분관계, 이사직을 일종의 소극적인 명예직으로 생각하는 재계의 관행 때문이기도 하다.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주주들이 이사들의 비리나 태만에 대해 마땅히 책임을 물어야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묻지 못하게 하는 제도적 또는 관행적인 장벽의 존재라 하겠다.
이러한 관행을 타파하기 위해 가장 유효하다고 생각되는 방안을 제의하고자 한다. 현행 이사회를 행동하는 집단으로 만들려면 우선 이사들에게 행동하지 않을 수 없도록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계약상의 ‘수탁자’인 이사의 비리나 태만때문에 ‘위탁자’인 주주가 경제적 손해를 입었을 때 그 배상을 경영자와 더불어 개인 이사들에게도 쉽게 청구할 수 있도록 제도와 관행을 바꾸자는 것이다.
일반주주의 단합을 용이하게 하고 회사장부 열람권을 강화하며 주주대표소송 내지 집단소송의 경제적 및 경제외적 비용을 줄여주면 경영자나 이사는 소송의 예방을 위해 주주(위탁자)에게 좀 더 충실한 의무감을 갖게 될 것이다.
일본의 경험을 보면 52∼65년 14년간 도쿄지방재판소에 접수된 주주대표소송은 겨우 7건이었고 92년 전국 지방재판소에 접수된 주주대표소송은 31건을 넘지 못했다.
93년 주주의 장부열람권의 강화, 소송수수료의 인하 등 관련 법 개정 후에는 소송건수가 급증해 96년 한해동안 전국 소송건수가 188건에 이르렀다.
미국에서는 주주가 경영자와 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집단소송이 비일비재하다. 95년에는 기업 경영자 이사 등을 상대로 하는 소송의 증가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새로 입법까지 했지만 소송건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는 주주집단소송이 늘면서 기업 이사회에서 업적이 부족한 회장과 사장을 과감히 경질하는 행동이 잇따르고 있다.
사람이 만든 물건이나 제도에 완전한 것은 없다. 주주대표소송, 집단소송 장려방안도 좋은 점이 있고 나쁜 점이 있다. 완벽한 제도란 바랄 수 없기 때문에 제도는 때와 장소에 따라 변해야 한다.
미국사회에서는 이미 플러스 마이너스를 계산해 주주소송을 제어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을지 몰라도 한국의 현 상황에서는 이를 장려함으로써 경영의 쇄신을 촉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백제민〈미 조지워싱턴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