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강정규/어른 욕심에 멍드는 童心

  • 입력 1999년 11월 26일 18시 48분


어려서부터 좋은 책을 많이 읽고 그것이 깊이 있는 생각으로 이어져 보고 느낀 바를 자기 언어로 원고지에 또박또박 옮겨 적는 일은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근래 대학입시에서도 논술고사가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행정부처며 금융기관, 그리고 여타 문화단체가 이런저런 명목으로 공모행사를 치르면서 어린이의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한껏 높아진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최근 평생을 흙과 함께 살며 자녀교육에 헌신한 장재녀여사의 귀한 뜻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경(常耕)어린이문학상’을 주관하면서 시종 겪게 된 일은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공정을 기하기 위해 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예심과 1차본심, 그리고 최종심을 거쳐 당선을 결정해 놓고도 학부모와 지도교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진짜 학생작품이 맞느냐”고 확인하는 촌극을 벌여야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곳의 같은 행사에서도 반복되는 일이다. 어른의 손길이 닿고 입김이 서린 작품은 부지기수이고, 심지어 다른 행사의 입선작을 그대로 베꼈거나 모작이어서 사후 당선취소가 되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가짜를 분별해내는 일이 진짜를 고르는 일에 선행한다. 그러니 일일이 확인과정을 거치게 되고 주최측은 그것도 못미더워 당선작품을 지상에 발표하거나 책으로 묶던 일을 기피하게 됐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학의 강의실에 가보면 책상이나 창가의 회벽에서 깨알같은 글씨의 숱한 낙서를 쉽게 볼 수 있다. 무슨 얘기 끝에 “이렇게 훔쳐보고 써서 100점을 맞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해서라도 장학금을 받았으면 좋겠다”해서 기가 막혀 웃고 만 적이 있다.

한 아이가 학교 뒷산에 앉아 지는 해를 보며 울고 있었다. “바보, 선생님은 바보. 뒤통수에도 눈이 달려서 칠판에 글씨를 쓰면서도 누가 장난을 치는지 다 안다고 하시구서는….”

철없던 어린시절, 무슨 일로인가 꾸중을 들을 때 “네 놈은 공불 얼매나 잘혔냐”는 아버님 말씀에 아이는 작심을 했다. 내일로 교내 일제고사가 박두했던 날, 아이는 청소당번까지 돌아간 빈 교실에서 옻칠한 책상위에 학습장을 연필로 베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얻은 우등상장을 구겨쥐며 아이는 울고 있었다. 까맣게 속아 넘어간 줄 알았던 선생님은 종례시간에 “새로 옻칠한 책상은 물걸레질이 좋지 않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요즘 전화통에 불이 난다. “우리애가 왜 떨어져요? 장관상도 받았단 말예요.” “우리 학원에서는 그렇게 많이 보냈는데 가작 한 편도 안 뽑혔어요?” 때마다 나는 할 말을 잊는다. ‘부동심자절가순진(夫童心者絶假純眞), 최초일념지본심야(最初一念之本心也)’라 했다. 무릇 동심이라함은 거짓을 하지 않는 순진함이요, 처음에 한 마음 품었던 그 마음이다. 그것을 우리 어른들은 망치고 있는 셈이다. 글은 곧 사람이니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낳는 것이라 했다. 그런데 우리네는 한 술 더 떠 고쳐주고 대신 써주고 베끼게 한다. 바늘도둑이 소도둑된다 했다. 그래서 요즘 세상이 요모양 요꼴이 아니겠는가.

하루종일 비가 내리고/시궁창 썩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앰뷸런스가 경적을 울리며/미친 듯 거리를 누비고 지나간다.// 비보 비보 비보 비보 비보 비보…/(어디서 화산이라도 터진 것일까?)//아아, 빨간 불 켜진 대한민국!/‘비보’입니까, 신령님?(민영 지음·‘경적’전문)

강정규〈동화작가·'시와 동화'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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