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고향을 버리고 남쪽으로 내려온 월남민들.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그들은 어떻게 적응하며 살아왔을까. 그들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가.
월남민은 공식적으로는 한국(남한)사회의 시민이지만,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이주민, 이산민이다. 한국의 월남민은 다이아스포라(Diaspora·이산)의 문제다.
월남민은 또한 남북간 인적 교류의 중요한 매개가 된다. 이런 점에서 월남민에 대한 연구는 통일의 중요한 기초작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동안 월남민 연구는 별로 없었다. 월남민들의 정체성을 연구한 이 책은 그래서 값지다.
이 책의 연구 대상은 정착촌에서 집단적으로 생활하고 있는 월남민들. 전국에서 가장 큰 월남민 정착촌인 강원 속초시 청호동 ‘아바이마을’과 전북 김제 용지농원을 현장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착촌 월남민들의 정체성을 규명했다.
정착촌 월남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친(親)정부적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지만 정착촌의 열악한 경제 문화적 환경, 냉전으로 인해 주변부로 살아간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한국사회의 냉전 사고 역시 그들에겐 커다란 부담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같은 벽을 극복하기 위해 남한 출신의 사람보다 더 친정부적 성향을 추구한다.
저자는 정착촌 월남민의 정체성을 좀더 명확히 하기 위해 엘리트 월남민과의 차이점을 밝혀낸다. 엘리트 월남민은 생활수준이 중상류층 이상인 월남민.
저자에 따르면 엘리트 월남민은 남한사회에서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지만 남한사회에 완전히 동화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남한사회를 ‘제2의 고향’ 삼아 살아가려는 정착촌 월남민과 대조적이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월남민의 정체성과 한국의 사회 문화와의 관계를 명쾌하게 규명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 곳 정착촌 월남민을 전체 월남민으로 일반화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이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성과는 소중하다. 사회과학 연구에서 소외됐던 월남민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529쪽, 1만8000원.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