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 프로출범이후 18년간 한국 프로야구의 명가(名家)로 군림해온 ‘타이거즈 왕국’이 몰락하고 있다.
한국시리즈 9회 우승에다 김봉연 김성한 선동렬 이종범 등 숱한 스타들을 낳은 해태 타이거즈.
하지만 이젠 아무도 해태를 명문구단이라 부르지 않는다.스타도 없고 의욕도 시들었다.29일엔 11년간 팀을 이끌던 에이스 이강철이 삼성 유니폼을 입었고 김정수마저 구단과 결별을 선언했다.
쌍방울과 마찬가지로 ‘타구단 선수 공급처’의 신세로 전락해 버린 해태.왜 이지경이 됐을까.
▽지속적인 선수유출=야구는 단체경기지만 스타의 비중이 절대적이다.팬도 스타를 보기 위해 구장을 찾는다.해태는 너무 많은 스타를 내보냈다.선동렬이야 선수 자신의 장래와 여론을 감안,어쩔 수 없는 경우였지만 이종범의 트레이드는 몰락의 ‘결정타’였다.그가 떠난뒤 해태의 홈관중수는 무려 24만명(61%)이 줄었다.광주시민들은 “(선)동렬이 없고 (이)종범이마저 떠나니 무슨 맛으로 야구를 보냐”며 한탄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한국최고의 마무리라는 임창용마저 삼성으로 트레이드했다.
▽모그룹의 경영난으로 인한 투자부족=역시 해태 몰락의 가장 큰 원인이다.어떤 조직이나 마찬가지지만 투자는 가장 큰 활력소.해태의 구단 운영비는 다른 구단의 절반수준이다.스타를 팔아 간신히 운영비를 막는 처지에 선수와 프런트가 의욕이 있을리 만무하다.한국시리즈 9회 우승이라는 꿈만 갖고는 살 수는 없다.
▽등돌린 선수단=지금은 고인(故人)이 된 투수 김상진이 암에 걸렸을때 구단의 허술한 선수관리체계에 실망한 이대진은 “더이상 해태에서 뛰고 싶지 않다”고 말했었다.주니치에서 은퇴한 선동렬은 27일 귀국 기자회견에서 “적어도 해태에선 은퇴경기를 갖고 싶지 않다”며 임대료문제를 놓고 주니치와 마찰을 빚은 해태에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해태와는 절대로 재계약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이강철은 그의 말대로 이제 삼성 선수가 됐다.
팀의 정신적 지주인 명장 김응룡감독마저 삼성 이적설이 나돌았다.결국 박건배구단주의 만류로 눌러 앉게 됐지만 김감독이 이례적으로 1년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은 그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음을 증명한다.
▽암담한 미래=광주는 역대로 프로야구의 가장 큰 ‘텃밭’이었다.해태의 근간을 이룬 스타들이 떠났어도 지속적으로 굵직한 선수들이 또 나왔다.하지만 해태의 주전을 이룰 차세대 주역들이 모두 떠났다.빈 자리를 채울 유망주들이 없다는 얘기다.미국으로 진출한 서재응(뉴욕 메츠) 김병현(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최희섭(시카고 컵스)이 예정대로 해태에 입단했다면 사정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해태에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틴다.선수 한두명 없다고 야구 못하냐”고 하지만 정신력만을 강조하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