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컨대 연극배우 손숙 씨는 그 짧았던 재임기간 내내 전문성 시비에 시달리다가 환경부장관 자리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김대중 정부 제1기 내각의 이해찬 교육부장관도 “교육 문외한(門外漢)이 교육을 망친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국회의원들의 상임위원회 배정이나 정부 산하단체 기관장 인사에서도 언제나 전문성 논란이 따라다닌다. 하지만 전문성에 대한 이러한 지배적 견해의 근거는 매우 취약하다. 역대 교육부장관은 대부분 대학교수와 총장들이었지만 교육이 잘됐다고 칭찬하는 이는 별로 없다.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은 거의 예외 없이 사법고시를 거친 판검사 출신이 했지만 사법권의 정치적 남용과 법조비리에 대한 국민의 원성은 예나 지금이나 하늘을 찌른다. 국방부장관도 모두 군 출신이 했지만 국민의 사랑을 받는 군을 만드는 데는 철저히 실패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분야에서나 마찬가지다. 전문성은 필요하지만 전문성만 있다고 만사형통인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24일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는 이런 사정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다. 변호사법 개정안을 심의하면서 내부고발자 보호조항과 ‘전관’의 사건 수임제한 규정, 변호사와 사무장의 법원 출입제한 규정 등 법조비리를 줄이기 위한 핵심 항목을 모두 삭제해 버린 것이다. 이 소위원회의 위원 6명 가운데 여기에 반대한 사람은 국민회의 조순형 의원 한사람뿐이었고, 삭제에 찬성한 나머지 5명은 모두 법조 출신이다. 15명의 법사위원 가운데 조순형 조홍규(이상 국민회의) 이규정(한나라당) 송업교(자민련) 등 6명의 의원들이 삭제된 조항을 모두 되살린 수정안을 제출했다.
이들 외에 목요상위원장과 최연희 박헌기 안상수 정형근 조찬형 박찬주 함석재 차수명 의원 등 나머지 9명은 법조 출신이다. 법조 출신으로서 수정안 제출에 참여한 이는 미국 변호사 자격을 가진 국민회의 유재건 의원 한사람뿐이었다.
우리는 지난해 가을 정기국회에서도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직접 간접적으로 사립학교 법인과 관련된 인사들이 많았던 교육위원회가 교육관련법 개정안을 심사하면서 사립학교의 학교운영위원회를 심의기구에서 자문기구로 격하시키고 사립대학 법인의 공익이사제 도입을 삭제하는 등 학교 운영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높이려 한 정부의 원안에서 크게 후퇴한 수정안을 가결해 버린 일이 그것이다. 변호사와 회계사 등 전문업종에 부가가치세를 부과하는 부가세법 개정안 역시 그 분야 출신 의원들의 끈질긴 방해 때문에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이번 변호사법 개정안 심의 과정에서 법조 출신 국회의원들은 여야를 초월하는 강력한 ‘직업적 결속력’을 과시했다. 옷로비 사건과 서경원 사건 재수사를 두고 여야가 살벌한 대결을 벌이는 시점에서 연출된 법조 출신 국회의원들의 ‘희귀한 여야 공조’는 보는 이를 슬프게 한다. 집단적 사익(私益)을 공익보다 앞세우는 ‘전문가’보다는 공익을 추구하는 자세를 가진 ‘문외한’ 장관과 국회의원이 나는 좋다.
유시민(시사평론가)denkmal@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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