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영묵/金대통령의 我執

  • 입력 1999년 11월 29일 19시 13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해외순방외교 역량은 자타가 인정할만하다. 김대통령이 이번에 마닐라에서 자신감있게 펼친 외교도 별로 흠잡을 데가 없었다.

초유의 한중일 3국 정상회담에서는 경제협력을 위한 공동연구를 전격 제안, 합의를 이끌어냈고 인도네시아 아체주 문제에 대한 참가국들의 ‘독립불가’합의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10여차례의 정상간 회동에서는 아시아국가간 ‘공통화두’를 찾아내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모습이었다. 덕분에 정상들로부터 ‘끊임없는 화해의 실험자’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이역(異域)에서의 성과를 잠시 뒷전으로 미루고 ‘국내 쪽’을 바라보면 곧바로 가슴이 답답해진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한때 수행기자들과의 간담회도 그만두자며 곤혹스러워했다.

5월 러시아 몽골 방문 때도 나라안은 ‘옷사건’으로 온통 벌집쑤신듯했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난 지금도 그 ‘악령(惡靈)’이 김대통령을 휩싸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를 탓할 일도 못된다. 6개월전 김대통령이 그토록 확신에 찬 어조로 강조하던 주장들이 하나하나 ‘판단착오’로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몽골 방문 당시 김대통령이 ‘최선의 선택’이라며 끝까지 감싸안았던 김태정(金泰政)전법무부장관과 박주선(朴柱宣)전법무비서관은 지금 구속위기에 처했다. 개편이라는 말도 꺼내지 말라던 사직동팀은 결국 해체 쪽으로 가닥을 잡을 수밖에 없게끔 돼버렸다.

결과론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김대통령이 ‘이제는’ 귀담아 들어야 할 얘기가 있다. 바로 6개월이 넘도록 계속되는 내치(內治)의 혼란상은 상당부분 김대통령의 ‘아집(我執)’에서 비롯됐다는 얘기다.

최영묵〈정치부〉ym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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