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용덕/市民없는 시민운동

  • 입력 1999년 12월 1일 19시 19분


녹색운동연합 사무총장 장원 교수가 ‘시민없는 시민운동’을 우려한 바 있다. 적지않은 시민단체들이 동원하는 인력 중 절반 이상이 고위 간부이거나 시민단체 행사 때 TV 카메라가 청중석을 잡지 못하고 단상만 비추는 행태는 시민없는 시민운동의 실상을 보여주는 사례다. 10여개 시민단체가 연합이란 주최 명의로 연대해 캠페인을 벌일 때에도 적은 인원이 피켓잔치를 벌일 수밖에 없는 것이 시민없는 시민운동의 실상이다.

시민운동에 시민이 없다면 과연 무엇이 있단 말인가. 시민운동 명망가, 시민운동 귀족만이 갖가지 분야에 단골 주역으로 중책을 겸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냉정하게 시민운동의 현실을 자성해 보자. 시민들의 공감이 적거나 시민들이 절실히 느끼지 못하는 사안을 시민운동의 주제로 잡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봐야 할 것이다. 시민운동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필연적 움직임이 아니라 몇몇 야심가들의 출세 지향 프로그램의 메뉴가 아니었는지도 검증해봐야 한다.

다원화된 세상에서 시민운동은 전문화돼야 한다. 그리고 전문화된 시민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선행 단계의 축적된 지식 경험이 확보된 다음에라야 가능하다. 몇몇 시민운동 명망가들이 이것저것 시민운동이라면 어느 분야든 가리지 않고 단골 주체가 돼서는 시민운동의 장래가 결코 밝지 못하다. 능력 자격을 검증받지 않은 분야에서, 시민운동 참여 그 자체 하나로 전문가 행세를 하고 그런 대우를 받는 현실에 정부나 언론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시민운동은 직업이 될 수 없다. 특수한 예외도 있겠지만 생계해결 수단인 시민운동은 순수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돈 많은 집 자식들이 서로간 원수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듯 시민단체 안에 먹을 것이 많으면 내분이 일게 마련이다. 시민운동을 통해 메이크머니의 기회가 주어지는 경험을 하면 순수성이 변질되고 기득권층이 생기고 알력과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다. 희생과 봉사, 자발적 참여, 무보수 활동이 전부라면 거기에서 이해 갈등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정부는 여론 주도세력을 잡기 위해 단골 시민운동 명망가들을 음으로 양으로 혜택을 주어 키운다는 평을 듣지 않도록 신경써야 할 것이다. 시민단체에 대한 지원도 실적을 명확히 파악해 투명하게 지원을 하든지, 아니면 아예 지원을 없애는 게 오히려 시민단체의 옥석을 가리고 참된 시민운동 발전의 토대를 만드는 길이다.

언론도 거품이나 허상을 쫓는 식의 피상적이고 무원칙한 취재경쟁을 지양해 참된 시민운동이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시민운동의 실태 파악이라도 제대로 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미국에는 정치자금법 개정을 위해 과거 고위직 공무원을 지내다 은퇴한 노인들이 주체가 돼 경륜과 지식을 동원해 무보수 자원 봉사하는 시민단체가 있다. 일본에는 한 제약회사의 얄팍한 상혼 때문에 건강을 잃은 청년을 동정해 하교 길에 책가방을 메고 캠페인에 참여하는 모임도 있었다. 거기엔 순수성 자발성만 있었고 시민운동 명망가나 귀족은 존재하지 않았다.

김용덕<식생활안전시민운동본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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