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승헌/예술계의 '잿밥타령'

  • 입력 1999년 12월 1일 19시 19분


1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내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예종)에서는 ‘시대에 대답하는 목소리―21세기 예술교육이 죽어간다’ 공연이 열렸다.

정명화 안숙선 최현수 등 이 학교 교수들이 참여한 이 공연은 ‘각종학교’인 예종을 정규대로 격상시키기 위한 ‘국립예술대 설치법안’이 최근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데 대한 항의시위였다.

예종측은 “석박사 학위를 취득할 수 없어 졸업생의 국제무대 진출과 대학강단에 서는 것은 물론 외국학생 유치도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일반대의 예술대측은 “또 하나의 예술대를 만드는 것은 설립취지에 위배된다”며 이에 반대하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지 못한 것도 이들이 국회 문광위에서 항의 농성을 벌였기 때문이었다.

예종측 주장에는 자가당착적 요소가 있다. 실기위주로 ‘교양인보다는 아티스트’를 길러내겠다더니 기반을 잡자 ‘신분상승’을 꾀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본질은 ‘밥그릇 싸움’인 것 같다. 각 학교의 졸업생이 ‘좁은 예술판’에서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근대적 도제식 교육과 인맥형성이 ‘미덕’인 예술계. 여기에 ‘학위’가 무게를 갖는 풍토. 예종의 주장은 이점에서 일리가 있다.

여기서 ‘비 예술계’의 시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학계 인사는 “대학이 되든, 전문학교가 되든 인재만 길러내면 된다”면서 “차제에 일반대의 예술실기 관련 학과를 모두 ‘예술학교’로 분리해내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 다른 인사는 “어떤 학교의 대학승격 여부는 자체 경쟁력으로 판단되어야지 다른 대학이 ‘간섭할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예술인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을 통해 ‘해체’를 표현해 왔다. 이번 사태는 ‘예술계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서곡일 수도 있다.

이승헌<문화부>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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