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홍은택/美 '벨트웨이 베이비'

  • 입력 1999년 12월 2일 19시 47분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의 외곽순환도로는 495번 도로. 수도를 허리띠처럼 감싸고 있기 때문에 ‘벨트웨이(Beltway)’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린다.

이 도로는 교통체증으로 악명높다. 그러나 더 불명예스러운 것은 이 도로가 힘깨나 쓰는 사람과 보통 국민을 가르는 경계선이 되고 있다는 점. 많은 미국인들은 정치인 변호사 로비스트 등이 벨트웨이 안쪽에만 신경을 쓰고 바깥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불평한다. 최근 의회가 국민의 여망을 저버린 채 선거자금법 개정안을 또 부결시킨 것도 그런 사례에 속한다. 미국인들은 그처럼 벨트웨이 안쪽만 쳐다보는 부류를 ‘벨트웨이 베이비’라고 비아냥거린다.

그런 기류를 의식한 대통령선거 예비후보들이 자기는 벨트웨이 베이비가 아니라고 발뺌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공화)는 부시 전대통령의 장남으로서 워싱턴 정치에도 관여했었다. 그런데도 벨트웨이 안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 자기에게 마약복용의혹이 제기된 것도 ‘워싱턴의 음모’라고 주장하고 있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공화)은 자기가 선거자금법 개정안을 발의한 장본인이라고 강조한다. 빌 브래들리 전상원의원(민주)은 벨트웨이 정치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에 의원직을 자진사퇴했다는 점을 집중홍보하고 있다.

앨 고어 부통령(민주)은 더욱 심하다. 그는 부친이 상원의원이어서 워싱턴에서 자랐다. 자신도 상하원의원과 부통령으로 수십년을 재직했다. 그런데도 그는 사병으로 복무했고 앨러배마주에서 결혼식을 올렸다며 워싱턴출신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소도 웃을 일이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벨트웨이 베이비의 이미지를 벗어야 할 만큼 미국의 정치불신도 심각하다.

홍은택<워싱턴특파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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