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법조계의 세별

  • 입력 1999년 12월 2일 19시 47분


▽어느 검사가 현직 장관의 독직사실을 알게 됐다.대통령은 법무장관을 통해 문제삼지 말도록 압력을 넣었다.검사가 기소할 움직임을 보이자 법무장관은 노골적으로 기소유예를 지시했다.그러나 검사는 ‘기소여부는 검사의 전속 권한’이라며 끝내 현직 장관을 수뢰혐의로 기소했다.이 사건으로 법무장관이 사표를 낸데 이어 검사도 사표를 던졌다.이승만(李承晩)대통령 시절의 실화다.

▽기소된 장관은 당시 유일한 여성각료였던 임영신(任永信)상공부장관,검사는 최대교(崔大敎)서울지검장.이런 기개를 가진 검사가 지금의 검찰에 과연 몇명이나 있을까.전직 검찰총수와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축소은폐 혐의를 받고있는 옷로비의혹사건도 애초 이런 검사들이 수사를 맡았다면 양상은 달랐을 것이다.고시 출제위원이기도 했던 최검사는 아들이 고시에 응시하자 고시위원직을 사퇴했다.“내가 고시위원으로 있을 때 아들이 합격하면 평생 흠이 된다”는게 그의 변(辯)이었다.공(公)보다 사(私)를 앞세우는 검사들을 꾸짖는 듯 하다.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街人) 김병로(金炳魯)선생이나 ‘사형수의 아버지’로 유명한 김홍섭(金洪燮)판사도 법관 이상의 큰 자취를 남긴 분들이다.세분은 ‘법률전문가’라는 한정된 틀속에 갇혀있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갖고있다.그 이상의 남다른 철학과 역할을 몸소 행동으로 보여줬다.인간으로서,공직자로서,법철학자로서 범인(凡人)의 경지를 넘는 삶이었다.‘법조계의 세 별’로 추앙받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세분의 동상이 오늘 그들의 향도(鄕都)인 전주 덕진공원에서 제막된다.전북출신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추진했으나 세분은 특정지역을 훨씬 뛰어넘는 법조계의 큰 스승들이다.전북인들의 자랑임과 동시에 법조계와 공직사회의 귀감이 아닐 수 없다.

육정수〈논설위원〉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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