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선동렬’도 세월의 도도한 흐름 앞에 무릎을 꿇었다.
체력은 떨어지는데 후배들은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싸움닭’이란 별명처럼 다이내믹한 투구폼과 공격적인 투구로 타자들을 압도했던 투수 조계현(35).
프로야구가 생기기 전인 80년대 초반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 에이스로 고교야구의 전성시대를 연 주인공.
프로에서도 그의 명성은 식을줄 몰랐다. 마운드에 오르기만 하면 완봉, 완투승. 그는 개인통산 19완봉승으로 은퇴한 선동렬(29완봉) 윤학길(20완봉)에 이어 역대 3위에 올라 있다.
9년간 해태의 확실한 선발투수로 활약하며 거둔 승수가 무려 108승(70패). 97시즌 뒤엔 당시로선 파격적인 트레이드머니 4억원에 삼성으로 이적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8승11패를 거두며 선발투수의 몫을 톡톡히 해냈지만 올해부터 그의 공은 예전같지 않았다. 직구는 130㎞대 초반의 ‘배팅볼’로 변했고 ‘팔색으로 춤춘다’던 변화구의 볼끝은 위력이 전혀 없었다.
단 1승도 따내지 못한 채 3패 평균자책 11.51.
‘투수로서의 생명이 끝났다’고 판단한 삼성은 그를 방출했다. 거리로 내쫓긴 실업자같은 참담한 심정이었음은 물론.
다행히 그를 불러주는 사람이 있었다. 해태시절 수석코치였던 ‘옛 은사’ 두산 김인식감독.
계약조건은 상관없었다. 선수생활을 다시 할 수 있다는 기쁨이 앞섰다. 그는 2일 올해 연봉 1억800만원에서 딱 절반이 깎인 5400만원에 도장을 눌렀다.
조계현은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원포인트릴리프라도 마다하지 않겠다”며 재기의지를 다지고 있다. 과연 두산에서 마지막 불꽃을 피울 수 있을지….
〈김상수기자〉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