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태정씨 '단죄'의 뜻

  • 입력 1999년 12월 3일 19시 15분


옷로비의혹사건에서 불거진 축소은폐 의혹의 핵심고리인 김태정(金泰政)전검찰총장이 마침내 검찰에 소환돼 후배들 앞에서 조사를 받았다. 어제 오전 검찰에 출두한 김씨는 사법처리를 예감한 듯 매우 긴장된 모습이었다. 김씨는 조사를 받기전 “후배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해 전직 검찰총수로서의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 보였다.

우리의 관심은 ‘자연인 김태정의 처벌’에 있지 않다. 올 한해 내내 검찰의 위상을 급격히 떨어뜨리고 정국마저 불안하게 만드는데 중심에 섰던 ‘공인(公人) 김태정에 대한 단죄’가 관심사인 것이다. 물론 전직 검찰총수가 후배검사에게 조사받는 것 자체가 개인적으로 큰 치욕이고 비극이다. 검찰조직으로서는 바로 전직 총수를 피의자로 조사하는 것이 곤혹스러울 것이다. 게다가 당초 수사결과를 근본부터 스스로 뒤집어야 할 검찰의 입장은 그야말로 뼈를 깎는 아픔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김씨는 특별검사팀의 수사결과 국가기관 문서를 사적(私的)으로 유출해 이용한 것으로 이미 드러났다. 검찰은 나아가 김씨가 옷사건을 축소은폐하는데 검찰조직을 활용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수사중이다. 그뿐만 아니라 김씨는 검찰을 만신창이로 만드는데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연초 대전법조비리사건 수사과정에서 터져 나온 심재륜(沈在淪)당시 대구고검장의 ‘항명파동’과 검사들의 집단서명파동은 당시 검찰총장인 김씨가 마땅히 책임졌어야할 사안이었다. 검사들은 그를 ‘정치검사’로 지목하고 검찰총장으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내지 못한 책임을 추궁하는 분위기였다.

그런 그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올바른 검사’로 비호하고 법무장관에 발탁함으로써 ‘불행의 씨앗’을 심었다. 그 와중에 터져나온 것이 옷사건이다. 김대통령은 검찰수사 당시 언론의 비판적 보도를 ‘마녀사냥’으로까지 표현했다. 결국 정권에만 충성하면 된다는 오도된 가치관을 공직사회에 심어준 것이 현정권이다. 따라서 김씨에 대한 단죄는 오늘의 검찰과 정치권력의 비정상적 관계를 되돌아보게 하는 상징적 사건이다. 검찰과 정치권력 모두 이번 사건에서 교훈을 얻어 환골탈태하지 않는다면 그의 단죄는 무의미하다.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은 평범하면서도 소중하다. 김대통령이 검찰에 써준 휘호처럼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검찰이 바로 서려면 검찰 자신의 특단의 노력과 함께 정치권력이 검찰을 정권유지의 도구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검찰에 대한 통제는 결국 정권에도 해(害)만 된다는 점을 이번 사건은 극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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