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진순/IMF 2년 개혁고삐 더 죌때

  • 입력 1999년 12월 5일 17시 57분


국제통화기금(IMF)과 구제금융 협약을 맺은 지 2년이 됐다. 국가 파산을 선언했던 그 날을 되돌아보면 감회가 새롭다. 지난 40년간 허리띠를 졸라매 이룩한 경제성장이 물거품이 되고, 파산의 수렁에서 언제 헤어나올 수 있을지, 한국 경제가 과연 회생할 수 있을지 아무도 자신할 수 없었던 실망과 불안, 고뇌와 두려움의 시절이었다. 누가 과연 한국 경제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지 분노하던 시절이었다.

한때 2000원을 위협하던 달러 환율은 이제 1200원 내외로 안정됐고 30%를 곧 넘어 천정부지 치솟을 것 같던 금리도 이제는 10%를 밑돌고 있다. 투기등급까지 떨어졌던 국가신용등급도 투자적격등급을 회복했다. IMF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중 한국을 제외하면 아직 단 한나라도 투자적격수준으로 국가신용등급이 회복된 나라가 없는 실정임을 감안하면 대단한 업적이라고 자부해도 괜찮을 것 같다.

5개 부실은행을 포함해 200여개의 대소 부실금융기관과 45조원에 달하는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과감하게 정리했다. 자칫 금융공황으로까지 번질 수 있었던 위기상황을 어렵게 극복했다.

소수주주권과 사외이사제도를 강화해 재벌총수의 독단적 경영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정비를 했다. 재벌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을 금지해 문어발식 확장을 막아 경영역량을 핵심사업에 총집중하도록 유도했다. 사실상의 이사제도를 도입해 재벌총수가 책임을 지지도 않으면서 경영을 좌지우지할 수 없도록 했다. 회생이 불가능한 기업은 과감히 정리하고 회생이 가능한 기업에 대해서는 기업개선작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은 멀다. 한국 경제가 위기를 완전히 벗어나고 위기재발을 근원적으로 막으려면 경제의 체질을 완전히 개선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제까지 한 일 보다는 이제부터 할 일이 더 많다. 재벌이 개혁을 했다지만 체질까지 바뀐 것은 아니다. 아직도 많은 재벌들이 금융계열사를 품안에 넣고 남의 돈으로 세력을 넓히려는 구태를 보인다. 능력있는 전문경영인을 영입하기보다는 총수의 수족을 임명하려는 구태도 남아 있으며, 주주총회에서는 소수주주의 건전한 비판에 귀기울기보다는 이들을 총회장에서 몰아내기에 급급한다.

금융구조조정을 실시했다지만 금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진정 변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철저한 여신심사와 리스크 관리 능력을 키워야 한다. 부실재벌 채권에 투자하는 무책임한 행위는 이제 근절돼야 한다.

정부와 공무원도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직 관치의 구태가 적잖이 남아 있다. 진정한 개혁을 추진하기보다는 겉보기 실적 부풀리기에 급급한 행태를 바꾸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효율적 정부로 거듭 태어나 동북아시아에서 사업하기 가장 좋은 여건을 제공해 세계 우수기업들이 몰려오도록 만드는데 공무원들이 앞장서야 한다.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변해야만 비로소 세계화의 폭풍 속에서도 21세기 일류국가로 발돋움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진순(KDI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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