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 (289)

  • 입력 1999년 12월 5일 17시 57분


씽크대와 냉장고까지 들어앉은 이 길고 비좁은 공간이 휑한 창고 같은 방 보다 내게는 훨씬 편했어요. 외출했다 돌아와 젖은 몸을 덥히면서 여기 앉아 홍차에 술을 타서 천천히 마시곤 했지요. 이렇듯 장황하게 방 이야기를 하는 건 이곳이 나의 세계였기 때문이어요. 여기서 비로소 그쪽에서 알 수 없이 짓눌려 있었던 자의식에서 벗어났어요. 나는 왕성하게 작업했어요. 나를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전쟁 후에 노동자들의 주거지로 쓰다가 다시 그들이 새 아파트를 짓고 옮겨간 뒤에는 비어있는 채로 창고로 사용 되었다고 하는데 시에서 사들여서 가난한 예술가들의 작업실로 개조해서 싼 값에 임대하고 있어요. 나는 전에 여기 있던 체코 음악가의 친구에게서 소개를 받고 입주했어요. 그네를 찾는 전화가 가끔 걸려 왔지요. 전화에다 ‘프라하로 연락하라’고 대답만 해주었지요. 나는 그네의 손때 묻은 식탁보와 부엌에 걸린 작은 액자 하나를 간직하고 있었어요. 식탁보는 그냥 흔한 무명 천인데 마가렛 모양의 자잘한 꽃이 네 귀퉁이에 수 놓인 것이어서 아마 그네의 개인적인 물건이라 생각 되어요. 아마 짐을 쌀 때 빼놓고 간 모양인지. 부엌의 액자는 간이식탁 앞에 앉으면 바로 머리 높이에 걸려 있는데요 석판화로 그린 케테 콜비츠의 팔을 고인 자화상이에요. 나는 이 그림 한 장으로 전의 주인이 마음에 들었답니다. 천구백 이십 연대의 케테는 이미 늙은 여자예요. 부드러움과 연민으로 가득찬 눈 아래 깊은 고뇌의 주름살이 잡혀 있구요 자식을 걱정하는 고향 집 어머니의 표정으로 그네는 화면 바깥을 바라보고 있어요.

나는 벽에다 아무 것도 걸지 않았지만 언젠가 카이저 빌헬름 교회 안에 있는 제삼세계 기념품 가게에서 샀던 포스터 한 장을 문 옆에 붙여 놓았지요. 그건 아메리카 인디언 전사의 사진인데요, 포토 릴리프 처리를 했는지 아니면 낡은 사진을 거칠게 복제해서 그랬는지 목탄으로 그려 놓은 것 같았지요. 무너져내린 단애 위에 서 있는 인디언 전사는 아랫편의 황야에다 뭔가 한 줌 집어서 뿌리고 있어요. 머리 위의 깃털이며 등에 멘 화살 꽂힌 전통과 한 손에 쥔 도끼 등으로 보아 그는 싸움에서 막 돌아온 전사가 분명했지요. 그가 씨앗이나 흙을 절벽 아래로 뿌리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그건 아마 누군가의 화장한 뼛가루인지도 몰라요. 사진의 아래쪽에 검은 인쇄체로 독일어가 찍혀 있는데 ‘어머니 대지는 성스럽다!’ 라는 문장이었어요.

나는 베를린의 겨울이 좋았어요. 매섭게 추운 날도 있지만 대개는 스산한 비가 내리지요. 머플러를 목 주위로 칭칭 감고 우산이 거추장스러우면 모자를 하나 사서 쓰면 되요. 여름 비처럼 소리나게 쏟아지는 그런 비가 아니라 그냥 하염없이 연이어 내려요. 그리고는 불 켜진 가로등 주위까지 부옇게 되도록 안개가 껴요. 스산한 한기가 목덜미와 소매 끝으로 해서 팔뚝까지 스며들 정도랍니다. 나는 자루를 메고 광장 건너편에 있는 세탁장으로 빨래를 하러 가곤 했는데 거기서 친구를 사귀게 되었어요. 동전 몇 개면 세제를 타내고 세탁과 건조와 다림질까지 한 코스로 할 수 있는 곳인데 음악두 나오구요 한쪽에는 잡지나 책들이 꽂혀 있고 음료와 커피 자판기도 있어서 빨래하는 동안 앉아 있기가 지루하진 않아요. 빨래를 돌리면서 앉아 있었는데 다 저녁 때라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요.

<글:황석영>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