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초등학생…불륜주부… '천의 얼굴' 전도연

  • 입력 1999년 12월 5일 18시 58분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은 “역(役)을 꾸며내는 듯한 배우는 스타가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스타는 인격의 변증법적 산물이다. 배우는 자신의 인격을 주인공에 부과하며, 주인공은 그 인격을 배우에게 부과한다. 이 ‘이중 인화’에서 스타가 탄생한다.”

절세의 미모나 고정된 이미지를 소비하는 상업적 전략에 기대지 않고 이 정의에 충실하게 자신을 배역 속에 쏟아부은 결과, 최근에 스타가 된 영화배우를 꼽는다면 아마 전도연(26)이 아닐까.

열일곱살 늦깎이 초등학생(내 마음의 풍금)에서 바람난 30대 주부(해피 엔드·11일 개봉)까지. 정상급 여배우로는 드물게 전도연은 과격한 변신을 서슴지 않는다. 어느 쪽을 맡아도 영민하지만 교활하지 않고, 연기 욕심이 많은 ‘전도연다움’이 묻어 있다.

아쉬울 것 없는 톱스타인데도 ‘해피 엔드’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격렬한 정사 장면을 연기하는 그의 모습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꼭 필요한 장면에서도 이미지와 CF를 의식해 노출을 꺼리는 동년배의 스타급 여배우들을 생각한다면, 온 몸을 내던진 전도연의 열연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땐 ‘이건 아니다’ 싶어 덮어버렸는데 ‘혹시 내가 놓친 게 있나’하고 자꾸 눈이 가더라고요. 섬세하고 디테일한 연기를 좋아하는데, 그게 가능할 것 같은 캐릭터였어요.”

CF가 끊기고 이미지가 구겨질까봐 겁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아뇨. 그거보다 사람들이 내 연기에 싫증이 나서 외면한다면 더 비참해지지 않을까요?”하고 반문한다.

‘해피 엔드’의 베드신 촬영 때 배역에 완전히 몰입해 상대역인 신인배우 주진모를 리드한 능숙함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촬영 도중 서툰 주진모가 자꾸 NG를 내자 주진모의 손을 끌어다 자신의 가슴 위에 얹고 “우리가 못하면 영화가 망한다. 제발 잘하자”고 다독였다는 후문.

“여배우를 예쁘게 찍고, 세련되게 다듬은 베드신이었다면 아이를 내팽개치고 불륜에 빠진 주인공 최보라의 감정이 제대로 살아나지 못했을 거예요. 이번에 정말 행복하게 연기했어요.”

그는 스스로를 ‘복받은 배우’라고 생각한다. 어떤 일에든 공감하는 능력과 감수성이 풍부해 아무 상관없는 남의 일에도 잘 웃고, 운다.

연기생활 8년째. 처음엔 영화가 관객과 만날 때 가장 기분이 좋았지만 요즘은 촬영할 때가 재미있단다. ‘해피 엔드’ 촬영 때도 “내 안에서 최보라가 막 나오는 걸 스스로 느낄 때 오르가슴에 견줄만큼 커다란 희열”을 느꼈다고.

“난 한가지 밖에 몰라요. 연애면 연애, 일이면 일…. 결혼생활과 일을 함께 하는 거, 그런 건 난 못해요.”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한 결과 그는 출연작이 개봉될 때마다 ‘역시 전도연’이라는 칭찬을 듣는, 정말 ‘복받은’ 배우가 되었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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