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치영/한국대표단의 '아전인수'

  • 입력 1999년 12월 5일 19시 56분


긴박했던 나흘간의 세계무역기구(WTO)시애틀 각료회의 내내 협상에 참여했던 우리 대표단의 태도는 자못 결연했다. 뉴라운드협상이 우리 국민과 농어민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를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대표단의 한사람은 “협상 결과를 놓고 국민이 어떻게 평가할지를 생각하면 부담스러운 마음이 앞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그런 부담이 지나쳐서였을까. 우리 협상단은 각료회의 과정에서 사안마다 아전인수(我田引水)식으로 해석을 내려 국내 여론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리 대표단은 분야별 실무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임수산물을 공산품과 분리해 협상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자진 철회했다. “어차피 협상 과정이 중요하지 않느냐”고 주장할 뿐 입장변경의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점진적 인하를 목표로 삼았던 농산물 관세는 ‘가급적 최대한 인하’로 의견이 모아져 내년부터 농업협상이 시작되면 미국이나 농산물수출국의 개방압력이 거세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대표단은 “품목별로 얼마나 관세가 낮아질지는 실제 협상에 들어가봐야 알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각료회의가 결렬된데 대해서도 대표단은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개막전날 기자단과의 간담회때 수석대표인 한덕수(韓悳洙)통상교섭본부장이 “우리로서는 뉴라운드협상을 예정대로 진행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라고 말한 것과는 다른 반응이다.

회의기간 내내 대표단이 잠도 제대로 못자며 국익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다는 점은 인정한다. 다만 협상장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우리나라는 어떤 영향을 받게 되는지를 국민에게 얼마나 정확히 알리려 했는지는 의문이다. WTO회의장이 아니라 대국민 관계에서 투명성문제가 더 심각할 수 있다.

신치영<경제부>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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