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영웅 세기말 감회]마라톤의 산역사 손기정옹

  • 입력 1999년 12월 5일 19시 56분


황영조 부축받는 손기정옹
황영조 부축받는 손기정옹
〈‘가는 천년의 길목.’ 20세기를 주름잡았던 우리네 스포츠영웅들의 감회는 어떨까. 아직도 ‘그 영광 그 순간’에 한없이 머물고만 싶은 걸까. 어차피 ‘장강의 앞강물은 뒷강물에 밀려 나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세상 이치. 한 세기를 보내는 이 순간 젊음과 열정을 바친 이들의 지나온 행적과 오늘의 삶을 시리즈로 조명해본다.〉

“날 할아버지라고 부르지 말고 오빠라고 불러.”

지난달 30일 낮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 신관 1층 뷔페식당.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영웅’ 손기정옹은 이날따라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 왼쪽 다리를 거의 못써 옆에서 부축하지 않으면 거동이 불편한 손옹은 부축하는 호텔아가씨에게 농담을 던졌다.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사진기자에게는 “지금 많이 찍어 놓아야 나중에 내가 죽으면 필요할 것”이라고도 했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 마라톤 영웅 황영조가 부축하자 “요즘 바쁜 것 같더라”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1912년생. 만으로 여든일곱. 이젠 귀도 어둡고 말조차 어눌하다. 입가엔 가끔 침이 흘러나오고 콧물도 흘린다. 지팡이를 잡은 손이 위태롭게 흔들린다. 그러나 중절모자에 검은색 코트 차림은 단정하기만 하다. 십자가가 그려진 목걸이가 유난히 눈에 띈다.

손옹이 바깥출입을 못한 지는 3년이 다 됐다. 아프면서부터 술 담배도 끊었다. 하루 세번 약 챙겨 먹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다. 병명은 왼쪽다리 동맥경화증. 병원에선 부지런히 걷기운동을 해보라지만 그것도 영 재미가 없어 할 맛이 안난단다.

이날 아침엔 안간힘을 다해 거의 20분만에 100m쯤 걸었다. 말동무만 있어도 조금 더 걸어볼텐데…. 한번은 한나절 걸어 동네이발소에 갔다가 그만 집에 가는 길을 잃어버린 적도 있다. ‘천하의 손기정이 왜 저렇게 됐나’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자존심이 많이 상했단다.

요즘은 세끼 식사하고 잠자는 게 일이라는 손옹. TV를 켜보지만 좋아하는 국악이나 판소리를 하는 곳은 없고…. 저녁식사 후 책 몇장 넘기다보면 곧 잠이 오고…. 그러다 오전 1시쯤이면 어김없이 잠이 깨고 만다. 이후가 고통이라는 것.

그렇지만 이날처럼 시내 나들이를 하는 날은 꼭 생일날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환히 웃는다.

오후 2시. 점심식사가 끝나자 ‘부자의 연’을 맺은 이인정씨(대한산악연맹부회장)와 황영조가 일어섰고 손옹은 못다한 말을 쏟아놓았다.

“고향 신의주에 가서 냉면이나 한그릇 먹어 봤으면…” 하기도 하고 “이런 호텔식당에서 개장국을 팔았으면 참 좋을텐데…”라고 하기도 했다.

오후 3시. 딸(손문영·58) 집이 있는 분당으로 향했다. 입가에 흐르는 침을 휴지로 닦아드렸다. 언뜻 눈가에 눈물이 괴며 기자의 손을 꼭 쥐었다.

집엔 아무도 없었다. 손옹은 호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며 열어달라고 했다. 5층빌라의 1층. 손옹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피곤한 듯 소파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는 “밖에 나가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많고 얘기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이렇게 꼼짝을 못하니…”라며 주루룩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닦아주자 어린아이처럼 다소곳이 있었다.

“내가 너무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한 것 같아 미안하네. 바쁜 사람을 너무 오래 붙잡아 놓은 것 같아.”

한때 100여리 길을 세상에서 가장 빨리 달린 사나이. 그러나 이젠 겨우 100m를 20분이나 걸려 가는 팔순노인.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끝이 없다. 소년시절부터 수많은 길을 달리고 달렸던 손옹.그는앞으로또 얼마나 먼길을걸어가야 할까.

〈김화성기자〉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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