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배인준/증시의 머피와 샐리

  • 입력 1999년 12월 6일 19시 44분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멕 라이언이 배역을 맡은 샐리는 엎어지고 넘어지면서도 결국 해피엔딩을 이끌어낸다. 거기서 ‘샐리의 법칙’이 나왔다. 시험 전날 우연히 뒤적거린 참고서에서 무더기로 출제된 경우처럼 재수좋은 일만 생길 때 이 말을 쓴다. 미국 공군의 에드워드 머피 대위는 기지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일을 하는데 몇가지 방법이 있으면 누군가 꼭 재앙을 낳는 방법을 쓴다’고 말했다. 그것이 ‘머피의 법칙’으로, 억세게 재수없는 일이 꼭 일어날 때 이 말이 쓰인다.

▽우리 증시의 개미군단엔 샐리의 법칙과 머피의 법칙 중 어느 것이 더 잘 들어맞을까. 여러 통계와 다수 개인투자자들의 경험은 머피의 법칙이 압도적으로 우세함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투자자 수는 증가일로다. 97년말 133만명에서 작년말 192만명으로 늘었고 지금은 400만명 정도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머피의 법칙에 발목잡혀도 자신만은 샐리가 될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믿음 또는 환상이 증시를 존재케 하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우리 증시에도 샐리가 없는 건 아니다. 96년 4월 단돈 1000만원을 빌려 주식에 투자한 지 3년8개월 만에 165억원을벌었다는중졸학력의빈농출신이모씨(35)는샐리중의 샐리라 할 만하다. 그는 수년간 하루 3시간만 자고 주가흐름을 연구, 이른바 공매도(空賣渡)투자와 데이트레이딩(동일종목 당일 사고 팔기)의 달인이 됐다니 단순한 샐리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거래하는 종목을 똑같이 사고 판 투자자들은 대부분 실패했다. 분초(分秒)까지 그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씨 자신도 지난 86∼90년엔 비극적인 머피였다. 농지를 담보로 대출받아 주식투자를 시작했다가 1억원의 빚을 졌고 그 바람에 부친이 화병으로 사망했다. 그의 미래는 영원한 샐리일까. 주가는 주가만이 안다고 하지 않던가.

〈배인준 논설위원〉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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