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밀레니엄]서양중심 그레고리曆으로만 '새천년'

  • 입력 1999년 12월 6일 19시 44분


지금 전세계는 예수의 탄생을 기준으로 하는 그레고리력(曆)에 따라 2000년을 기다린다.

21세기가 2000년부터인지 2001년부터인지 정확히 따져보겠다는 논의는 이제 별 의미가 없다. 물론 이에 관한 논란은 기원전 1년과 서기 1년 사이에 서기 0년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데서 비롯돼 아직 명쾌한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전세계는 이미 새 밀레니엄 맞이에 들어갔다.

서기 2000년은 단기 4333년, 대만의 민국(民國)89년, 일본의 헤이세이(平成)12년, 불기(佛紀) 2543년, 이슬람기 1421년. 캘린더는 하나가 아니다.

자신들의 연호를 고집하는 일본이나 대만이 새 밀레니엄을 준비하느라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이들이 이미 서구의 문화권 속에 들어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슬람국가인 이집트에도 밀레니엄은 여지없이 찾아온다. 사회학자 네이빌 압둘 파타는 “새 밀레니엄이 사회에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가져온다는 공감대가 있다”며 “이집트의 엘리트들은 새 밀레니엄의 문화적 의미를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이슬람국인 말레이시아의 시민들도 밀레니엄 선전에 휘말려 12월31일 레스토랑과 디스코텍에서 놀 계획을 세우느라 샴페인이 동이 날 지경이다. 범말레이시아 이슬람당이 최근에 이슬람력(曆)으로 그레고리력을 대치하자고 주장했지만 귀를 기울이고 있는 이는 별로 없다.

그렇다고 전세계가 그레고리력으로 통일된 것은 아니다. 힌두교가 지배적인 인도에서는 다신교인 데다가 해석도 다양한 힌두교 때문에 다중적인 역법이 있다.

어떤 역법에 따르면 2056년이지만 또다른 역법에 따르면 1921년이다. 어떤 경우든 그것은 단지 거대하고 끝없는 시간의 소용돌이 중 한 순간일 뿐이다.

12세기에 세워진 고대 크메르의 앙코르 와트 조각에도 밀레니엄을 축복하는 것과 같은 그림이 있다.

그들에 따르면 우리는 ‘칼리 유가’라는 43만2000년으로 향하는 몇 번의 천년 중 하나에 속해 있을 뿐이다.

서구적인 밀레니엄 잔치만으로는 이 사람들을 만족시키지 못할 듯하다.

사람들은 밀레니엄 파티와 록 콘서트 계획에서 결핍된 무언가를 찾는다. 이집트의 흥행주들은 현대적인 밀레니엄 잔치에 고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효과를 집어넣고 싶어한다.

지구촌 일부에서는 지역적 정체성이 세계적인 밀레니엄 열풍을 압도하는 곳도 있다. 예컨대 많은 이란인들은 그레고리력에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2000년은 그들의 계산법에 따라 1379년일뿐이다.

이들에게 새해는 꽃들이 다시 피는 봄에 온다. 참조:AP통신(Donna Bryson)

〈김형찬기자·철학박사〉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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