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 하겠어요?
라고 그네가 말했겠죠. 나는 고개를 저을까 하다가 그네의 고독에 동참하기로 마음을 먹고는 손을 내밀며 당케, 하고 응락했어요. 그런데 술잔에 입을 대는 순간 꼬냑과 같은 독일 브랜디라는 걸 알았지요. 맛과 향이 아주 괜찮았어요. 내가 그네에게 물었죠.
한 잔 더해도 되겠습니까?
내 말이 전달이 되었는지 그네는 물론 그렇게 하라고 대답했고 나는 한 잔 더 따라서 마셨어요. 그네도 다시 한 잔.
나는 마리 클라인 부인이에요. 당신의 이웃에 살아요.
정말이에요? 나는 한입니다.
알고 있어요. 도어의 명패에서 봤지요.
그네가 나와 마주보고 있는 방에 살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는데 아마도 할머니는 처음 이사 오던 날부터 나를 살펴보고 있었나 봐요.
우리 남편도 화가였다오. 지금은 죽고 없지만. 그는 동양을 좋아했어요. 내 방에는 그가 좋아하던 중국 도자기가 몇 점 있는데…원한다면 내가 나중에 보여 줄게요.
유학생 동료들이 이웃에 혼자 사는 노인들을 조심하라고 주의를 준 적이 있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대개 개나 고양이 한 마리와 살고 있었어요. 그것들과 식구 사이처럼 혼잣말로 끊임없이 대화하고 남의 일에 병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한번 말을 터 주면 이 일 저 일로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를 쓰면서 자꾸 일상으로 비집고 들어온다지요. 그러나 사실은 나도 누군가 이웃을 만들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거든요. 우리는 어떤 단어는 서로 알아듣지 못하고 영어 문장을 섞어 쓰기도 하면서 빨래가 다 끝날 때 쯤에는 그 술병을 다 비워 버렸어요. 내가 그네에게 먼저 말해버렸죠.
도자기 구경을 할 수 있을까요?
오, 그럼요.
우리는 오래된 사이처럼 빨래 뭉치를 옆에 끼고 우리 아파트로 갔어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나선형의 철제 계단을 올라 같은 층에서 오른쪽이 내 방이고 왼쪽이 클라인 부인의 방이었지요. 그네가 문을 열고 먼저 들어가서 불을 켰어요.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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