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사 신씨네가 지난 주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지만 ‘거짓말’ 불법 복제판의 유통은 워낙 광범위해 거의 차단이 어려울 지경이다.
중견 영화사가 11억원을 들여 제작했고 영화진흥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부산영화제에서 공식상영된 영화가 개봉도 되기 전, 인터넷에서 먼저 나도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올해초 ‘O양 비디오’ 사건이 개인 사생활에 대한 ‘사이버 테러’였다면, ‘거짓말’ 사건은 한 영화사의 영상 저작권에 대한 ‘사이버 테러’다.
▼유통실태▼
‘거짓말’ 불법 복제판은 10월말부터 인터넷의 파일전송 프로토콜(FTP) 등을 통해 유통되기 시작해 이제는 복제 CD로 공공연하게 유통되고 있다.
불법 복제 CD의 최근 거래가는 5000원선. 1시간짜리부터 무삭제 원본인 1시간50분짜리 CD까지 2,3개 버전이 있고 일부 대학에서는 비공식 상영회도 열린 것으로 알려졌다. ‘거짓말’ 인터넷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에는 한 고교생이 “우리 반의 80%가 이 영화를 CD로 봤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거짓말’과 ‘O양 비디오’▼
인터넷과 불법 복제 CD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는 점은 같지만 유통의 성격은 판이하다.
성공회대 김창남 교수(신문방송학)는 “‘O양 비디오’ 사건이 집단적 음란관음증이자 한 개인에 대한 인권침해였다고 한다면 ‘거짓말’ 사태는 사실상 검열의 기능을 가진 등급위원회가 정보를 차단한 데 대한 역기능이 주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연세대 조한혜정 교수(사회학)는 “‘거짓말’에 대한 관심은 기성의 권위에 대한 반발과 막힌 것에 대한 호기심, 이를 부추기는 상혼이 결합돼 발생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O양 비디오’ 사건이 인터넷을 통한 인격적 침해라면, ‘거짓말’은 인터넷을 통한 경제적 침해라고 볼 수 있다.
박교선 변호사는 “영상저작물인 ‘거짓말’이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인터넷상에서 복제 배포되고 있는 것은 명백한 저작권 침해”라고 말했다.
▼대책은 없나▼
지난주 제작사 신씨네의 경찰 수사 의뢰 이후 인터넷 해적 사이트와 서울 용산, 청계천의 불법 비디오는 현재 자취를 감춘 상태. 그러나 대학가에는 여전히 CD 복제가 성행하고 있다. CD복제는 빈 CD와 CD레코더만 있으면 순식간에 가능해 막을 방법이 없다.
신씨네 기획실의 최수영씨는 “성애장면만을 모은 CD나 영화로 편집되기 전의 무삭제 CD가 음란물과 똑같은 방식으로 유통되거나 다뤄지고 있어 ‘거짓말’이 영화로서 평가받을 기회조차 잃어버렸다”고 개탄했다.
이에 대해 문화평론가 김지룡씨는 “무한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복제시대에, 국민들이 균질한 문화를 향유하도록 정부가 통제해야 한다는 개념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며 “‘볼 권리’와 ‘안 볼 권리’ 모두를 지켜줄 수 있도록 등급외전용관(성인전용관)이 빨리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희경·김갑식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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