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동권 학생회 선호▼
최근 서울대 등 전국 대학들의 절반에 가까운 학생집단에서 과거와 달리 소위 비운동권 후보를 총학생회장으로 선출하였다. 필자의 대학에서도 최근 운동권 후보들 사이에 경쟁이 있었으나 너무 많은 무효표가 나와 내년에 다시 선거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그렇다면 대학생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런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고,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비교적 시간과 돈(?)의 여유를 갖고 있는 유한계급, 즉 한국의 대학생 교수 종교인 집단들은 진정 오락과 사교만을 좇는 유한마담류의 역할밖에 하지 못했는가.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그들은 고달픈 생업에 매달리지 않는 대신에 그 여유를 공익적(公益的) 활동에 나름대로 바칠 수 있었다. 예컨대 우리 사회의 두가지 지향점, 즉 민주화와 통일 이데올로기를 촉진시키는 데 그 집단들이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최소한 대학생 교수 종교인이 무슨 큰 정의감이 있어서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매진했다기보다 유한계급의 여유를 바칠 명분있는 대상을 그 이념들에서 찾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어쨌든 지금까지 성취한 한국 민주화와 통일 기운의 공(功)은 상당부분 대학생 집단에 돌려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것처럼 민주화와 통일기운의 이데올로기는 더 이상 한국사회가 추구해야 할 주요 방향이라기보다 거의 현실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대학생사회는 아직도 그런 과거 이데올로기들에 집착되어 있는 총학생회 후보들을 거부할 수밖에 없는, 즉 비운동권 학생회장을 선호하는 결과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한국사회는 이제 더 이상 한두 개의 이데올로기에 압도될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세계가 하나의 공동체를 지향하고, 지식과 정보가 문명의 토대가 되며, 자연환경의 ‘모든’ 생명을 존중하려는 새천년이 다가오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대학생집단이든, 교수집단이든, 아니면 종교인집단이든, 그들 유한계급이 ‘여유’를 바칠 만한 가치가 있는 사회적 이념들은 분명히 과거와 다르고 다양하다.
▼소비-향락 경게해야▼
또한 대학의 교육환경도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21세기 대학교육의 가장 명확한 특징은 학습자 중심의 교육문화, 학생을 피교육자로 보기보다 학습의 파트너로 보는 관점, 고비용 저효율의 교육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 환경, 재학생과 졸업생의 구분이 없어지는 평생학습시대의 도래, 그리고 정보네트워크의 발달로 때와 장소가 다르게 이루어지는 비동시적 교육환경 등이다. 그렇다면 대학생집단이 유한계급으로서 ‘여유’를 바칠 만한 학내 가치들은 바로 이런 변화의 방향들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작금의 대학생운동 방향을 보면서 진정 21세기의 사회적 가치들과 대학교육의 환경변화를 준비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예컨대 비운동권 총학생회 후보들이 내세우는 문화운동은 주로 감각적인 놀이문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것은 또한 대학가 주변에 범람하는 소비향락주의와 우연히 잘 어울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한국의 대학생집단이 마치 오락과 사교에만 탐닉하는 유한마담류의 유한계급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반영하고 있지 않는지 우려된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데 필요한 대학생운동의 방향을 제시해줄 필요가 있다. 그들은 넓게는 세계공동체, 지식정보문명, 생명주의 등을 그리고 좁게는 학습자 중심, 파트너십, 평생학습 등을 향한 것들이다. 물론 그 외에도 정보 지식 환경 학습 등으로부터 소외된 이웃들에게 유한계급의 특권인 ‘여유’를 헌납할 때 비로소 과거 대학생운동이 이룩했던 민주화와 통일 이데올로기에 대한 성과만큼 공익적이지 않겠는가.
김학수<서강대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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