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 4대 광역권 개발에 74조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은 현재 정부채무가 134조원이나 된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며 만약 실시할 경우 엄청난 인플레를 유발해 결국 또 한차례 환란(換亂)을 맞을지 모른다는 지적이 많다.
농협 정책대출 금리를 5%에서 3%로 낮춰주는 내용의 ‘농어촌 부채경감 특별법’도 그렇다. IMF이후 이미 1조4620억원 가량의 농어가 부채를 덜어준 정부가 왜 다시 농어민에게 파격적 금리로 혜택을 주려는 지 그 속셈이 의심받고 있다. 여권이 총선 패배 위기감에 눌려 표몰이가 그나마 용이한 농어촌을 겨냥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이는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특정 경제주체만을 위한 선심은 다른 계층의 불만을 초래할 뿐 아니라 사회전반의 도덕적 해이감까지 심화시킨다.
물론 정치권이 선거철 표를 의식해서라도 국민의 삶과 직결된 정책과 제도를 손질하겠다는 것을 나무랄 일은 아니다. 역설적으로 선거가 없다면야 정치인들이 어디 민생에 관심을 기울이겠느냐는 얘기도 있지만 어쨌든 정치인들이 유권자에게 눈을 돌려 온갖 공약을 쏟아내는 게 대견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 문제다. 도무지 되지도 않을 일, 추진해봤자 나라살림에 더 큰 손해만 볼 일을 면밀한 검토없이 남발하는듯한 자세는 용인하기 어렵다.
정부가 선거를 앞두고 생색내기 차원의 돈 쓸 일만 나열하다 보면 그 후유증은 결국 국민에게 되돌아온다. 우리는 선거만 끝나면 물가가 턱없이 치솟고 실업률 또한 급증하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정치인들은 말로는 그럴싸하게 선거를 국민적 축제로 치러야 한다며 온갖 장밋빛 약속을 내놓곤 했지만 그 뒤에 남은 것은 빚잔치가 대부분이었다.
개혁을 표방하며 출범한 ‘국민의 정부’에서도 이같은 선거 구태가 재연된다는 것은 유감이다. 일시적 인기정책이란 것이 결국은 실정(失政)이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여태 파악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이제 감시는 유권자의 몫이다. 나눠주는 사탕 한 알의 단 맛에 빠지다 보면 어느새 이는 썩게 마련이다. 선거철 경제의 거품만 부풀렸던 선심정책이 과연 우리 삶의 질에 어떤 역효과를 불러왔는지를 냉정히 판단해야 한다. 그래야 정치의 부풀리기 현상도 차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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