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의 분할 매각을 허용하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안의 경우 국회 산업자원위 전체회의에만 올려진 채 심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여야(與野)의원들이 한전 민영화를 반대하는 한전 노조와 일부 시민단체들의 눈치를 보느라 이번 정기국회에서 이 문제를 다루지 않기로 ‘담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비자의 권익보호를 위한 제조물책임법은 여야가 법안에 합의하면서 시행시기를 10개월 늦췄는데, 이 또한 업계의 눈치보기란 비난을 사고 있다. 이밖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국가채무를 줄이고 재정을 건전화하기 위해 정부 여당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제정하기로 한 ‘재정적자 감축을 위한 특별조치법’은 아직 국회에 제출조차 되지 않아 연내 제정이 사실상 무산됐다. 여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여당 프리미엄’을 제약하는 특별법의 제정을 꺼리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요즘 국회의원들은 일부 시민단체의‘낙선운동 협박’ 등으로 법안을 심사하기조차 겁난다고 하소연한다. ‘조세 8적(賊)’ ‘교육 7적’하는 판에 제대로 입법활동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의정감시활동의 일환이라고는 하지만 명백히 선거법 위반인 시민단체의 이런 움직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비난이나 하소연에 앞서 왜 이런 ‘과격한 반응’이 나오는것인지부터 숙고해야 한다.
그 근원적 이유는 총체적 정치 불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입법활동에 있어서도 ‘로비와 압력’을 내세우지만 그 자체보다는 당장 내년 총선에서 표가 될지 안될지를 따져보고 되는 쪽에 매달리는 데서 ‘로비와 압력’을 자초하는 것은 아닌가. 더구나 의원 개인의 이해나 여야 정당의 당리당략에 치우쳐 일부 민생 개혁 법안들이 왜곡 변질 개악 실종된다면‘정당한 압력’을 탓할 계제가 아니다.
어느 면에서 ‘로비와 압력’ 없는 민주주의란 있을 수 없다. 정치란 ‘로비와 압력’으로 표출되는 각기 다른 이익집단의 이해와 갈등을 조정하고 수렴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다소 도에 지나친‘로비와 압력’이 있다고 해서 국회가 입법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눈치나 보면서 법안처리를 늦추거나 그 내용을 변질시킨다면 그 폐해는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소신과 주견이 뚜렷한 국회의원이라면 눈앞의 표만을 생각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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