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학마저 '붕괴'되는가

  • 입력 1999년 12월 15일 19시 42분


군대에 다녀오는 기간을 제외하고 대학 과정을 4년 안에 서둘러 끝마치는 것은 이제 옛날 얘기가 되어가고 있다. 교육부 집계에 따르면 전국 대학의 휴학생 숫자는 50만명으로 전체 재적 학생 155만명 가운데 32.4%나 된다. 대학생 3명 중 한명 꼴로 휴학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 중에는 경제난으로 등록금을 마련 못해 휴학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대개는 고시나 취업 준비, 해외연수 등 사회적응능력을 키우기 위해 자발적으로 학업을 중단한 학생들이다. 다시 말해 좀더 ‘준비된 사회인’이 되기 위해 졸업을 미루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요즘 젊은이들의 현실감각을 엿볼 수 있다. 노동시장이 급변하면서 한 직장에서 평생 고용이 보장되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 현재의 대학생들이 사회의 주역이 될 10년, 20년 후에는 더욱 달라질 게 분명하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학생들은 확실한 자격증을 따거나 외국어 실력을 갖추려 하고 있다. 창업쪽으로 눈을 돌리는 학생들도 많다. 이를 위해서는 시간적 여유를 갖는 것이 중요하지, 대학 졸업장은 급하지 않다는 판단이다.

이같은 현상은 개개인의 직업능력이 강조되는 21세기 지식기반사회를 앞둔 시점에서 하나의 세태변화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시각을 바꿔 대학과 교육의 미래라는 관점에서 볼 때는 걱정되는 바가 적지 않다. 요즘 대학교수들 사이에는 중 고교의 ‘교실 붕괴’와 비슷한 현상이 대학에도 나타나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학생들이 수강신청만 해놓고 강의실에 들어오지 않거나 강의는 뒷전이고 취업준비 고시준비에만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휴학생의 급격한 증가도 대학 붕괴의 또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 붕괴는 중 고교의 교실붕괴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원하는 공부를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데 기인한다. 그러나 대학이 취업준비 기관으로 스스로 위상을 낮춘다면 몰라도 ‘지식 생산기지’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모든 학생들이 ‘돈되는 학문’ ‘돈되는 공부’에만 매달린다 하더라도 대학, 나아가 국가는 이에 휩쓸리지 않고 학문의 균형적인 발전을 도모해야 할 의무가 있다. 특정 분야의 학문만으로는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비인기 학문의 고사(枯死)와 연구기능의 실종으로 이어질 조짐이 대학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식 생산의 최일선에서 활약할 인재를 길러내는 이른바 엘리트교육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함께 한편으로 현재의 대학이 직업교육 기관으로서 문제는 없는지 대학 교육 전반을 점검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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