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파나마운하 반환기념식에 미국에서는 빌 클린턴 대통령도, 앨 고어 부통령도,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도 참석하지 않았다. 올해말까지 운하를 파나마에 돌려주기로 1977년에 결정했던 지미 카터 당시대통령이 대표로 참석해 반환문서에 서명했다. 클린턴대통령은 파나마정부의 운하관리능력에 신뢰를 표시하는 성명만 냈다.
이 운하가 미국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볼 때 이렇게 홀대할 기념식은 아니었다. 미국 역사교과서들은 파나마운하 건설과 개통이 미국의 세기(20세기)를 연 사건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함으로써 미국은 양대양을 거느린 유일한 강국으로 컸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군함들은 이 운하를 오가며 독일군과 일본군을 격파했다.
물론 운하의 중요성은 그 후 줄어들었다. 미국 해군은 폭이 좁은 이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항공모함을 1976년부터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 운하가 이제 중요하지 않아서 미국 정부가 기념식을 소홀히 한 것 같지는 않다.
이 문제는 미국에서 매우 민감하다. 카터 전대통령과 운하반환협정 비준에 찬성한 상원의원들 가운데 9명이 직후의 선거에서 무더기 낙선했다. 미국의 다수 여론은 지금도 반환에 반대하고 있다. 내년 대통령선거에 나서려 하는 공화당의 예비후보들은 국가안보 요충지의 포기라고 선동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괜히 기념식에 참석했다가 정치적 책임만 뒤집어쓸지도 모른다고 클린턴행정부는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은 1914년 이후 85년 동안 남의 나라 운하를 실컷 사용하다 뒤도 안보고 돌아서는 야멸찬 엉클 샘의 인상을 남겼다.
홍은택<워싱턴특파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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