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가지 기술을 쓸 줄 알아 만기’라는 우스개가 따라다니기도 했던 그였지만 요즘에는 ‘이만기 장사’보다 ‘이 교수님’이라는 호칭이 더 친숙하다. 양복 차림으로 큰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경남 인제대 교정을 걷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보통’ 교수님이다.
사회체육과 조교수로 재직중인 그는 다음 학기에 부교수로 진급한다. 강의 과목은 생리학과 해부학, 응급처치학 등. 어쩐지 씨름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이만기의 전공은 운동생리학. 예정대로라면 내년 8월이면 중앙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게 된다.
천하장사대회 개막일인 10일에는 아침 일찍 중앙대에서 학위 논문의 개요 발표를 한 뒤 대회가 열리는 인천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이달 초에는 난생 처음으로 결혼식 주례도 했다. 인제대 출신의 ‘캠퍼스 커플’이 주례를 부탁해왔던 것.
“젊은 나이에 주례를 서려니 다소 생소하기도 했지만 이제 선수가 아니라 제자들의 존경을 받는 ‘선생’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더군요.”
그렇다고 그가 씨름판을 떠난 것은 아니다. 인제대 씨름부의 감독도 겸임하고 있는데다 KBS 씨름 해설가로도 활약하고 있다. 한 때 프로팀 지도자 제의도 있었지만 “우리 경기인 씨름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정리하는 것이 더 의의가 있을 것 같아서…”라며 고사했다. 해설가로 8년 가까이 마이크를 잡은 덕에 누구와 ‘입 씨름’을 벌여도 자신있을 정도의 입담도 갖췄다.
해설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에 대해 그는 서슴없이 “입에 밴 경상도 사투리”라고 답했다. 선수 생활을 해봤으니 선수들의 심리나 기술적인 면은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그것을 ‘표현’한는 것이 문제라는 것.
“사투리는 많이 고쳐졌어요. 요새 고민하는 것은 민속경기인 씨름에 맞는 우리 용어를 찾는 점이지요. 속담 풀이집을 보면서 적절한 표현을 연구합니다.”
교수,감독,해설가 등 ‘1인 다역’으로 활동하느라 여전히 분주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그는 “민속 씨름의 인기가 현역에서 뛸 때보다 덜 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이런 일 저런 일▼
▽그 때는=프로씨름이 처음 출범했을 때 ‘프로 대우’를 못받았다. 상금은 당연히 ‘기타소득’으로 분류됐다. 첫 천하장사 타이틀을 땄을 때 받은 상금이 1500만원이었는데 이중 세금 300여만원은 떼고 받았다. 200여만원은 선배들 인사하는데 쓰고 500만원을 모교에 전달했다. 나머지 돈으로 고향에서 잔치를 하고 나니 남는 것이 없었는데 다시 종합 소득세를 내라는 통지서가 날아왔다. 모교에 전달한 500만원을 기부금으로 처리해 주지도 않아 “씨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족들은=속옷 광고에 함께 출연해 유명해진 두살 아래 아내 한숙희. 지금은 애들 뒷바라지 하는 ‘평범한 주부’로 산다. 아들 민준(8)과 동훈(6)은 나를 닮았는지 또래들보다 체구가 큰 편이다. 그러나 씨름을 시키고 싶지는 않다. 운동은 쉬운 길이 아니다.
▽학교에서는=‘씨름 선수’ 시절의 질문은 거의 받지 않는다. 수업시간엔 학생들에게 여러 계층의 사람을 만났던 경험을 얘기해준다.그것이 큰 공부다.
▼남기고 싶은 말 "씨름은 예의 운동"▼
씨름은 ‘예의와 도리’를 중요시하는 운동입니다. 후배들에게도 경기의 승패만큼이나 예의를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합니다.
또 씨름선수로서 민족의 정서와 얼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민속 씨름은 엄연한 프로 종목이므로 끊임없는 자기 계발은 필수지요.
우선 기술과 체력을 향상시켜야합니다.씨름을 그저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직업’이라고 생각한다면 훈련에 임하는 태도가 달라질 겁니다.
체중을 지나치게 늘리기보다는 균형잡힌 체격을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프로 스포츠에서 경기는 그 자체가 상품입니다.‘무게’보다는 ‘기술 씨름’이 관중을 사로잡습니다.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지나친 ‘샅바싸움’은 금물입니다.관중들이 짜증만 낼 뿐입니다.
▼'해설가 이만기’가 보는 요즘 씨름판▼
김영현과 이태현의 ‘양강 체제’가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전반기 이태현, 후반기 김영현으로 판도가 나뉘었던 것처럼 당분간 두 선수가 씨름판을 이끌어갈 전망이다. 이들을 능가할만한 ‘대형 신인’이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고참급중에서는 김경수,신봉민,황규연이 김영현과 이태현을 위협할 ‘복병’으로 자리잡고 있다.
김영현은 신장을 이용한 씨름이 일품이다. 밀어치기와 잡채기는 이미 수준급이고 요즘에는 드는 기술까지 익혀서 무르익은 씨름을 하고 있다.그러나 중심이 높고 체력이 약한 것은 아직도 단점으로 지적된다.
이태현은 고난도의 기술을 구사하는 선수다. 큰 기술도 좋지만 잡기술과 되치기는 정말 일품이다. 김영현을 넘어서려면 그 기술을 뒷받침해줄 힘을 기르는 것이 우선 과제다. 체력도 좀 부치는 것 같은데 체력 강화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정리=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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