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최근 3명의 인류학자들이 구석기시대의 여성들에 대한 우리의 진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흔히 ‘비너스’라고 알려져 있는 2만7000∼2만년 전에 제작된 손바닥만한 크기의 여성 조각상들을 새로 분석해본 결과, 후기 구석기시대의 여성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이룩해냈으며, 경제적으로도 커다란 힘을 갖고 있었고, 재봉사로서의 능력까지 지니고 있었음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옷걸친 돌조각 많아▼
일리노이대의 올가 소퍼 박사와 머시허스트대의 제임스 아도바시오 박사 및 데이비드 하이랜드 박사는 내년 봄에 발간될 ‘현대 인류학’에 발표한 논문에서 비너스 조각상들 중에 옷을 입고 있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조각에 표현된 의류들을 면밀하게 조사한 결과 구석기시대 여성들이 식물의 섬유를 이용해서 천 밧줄 그물 바구니 등을 짜는 혁명적인 기술을 완전히 터득하고 있었음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소퍼 박사는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냄새나는 짐승가죽’만을 입기는커녕 오늘날의 리넨과 매우 흡사한 훌륭한 천을 만드는 법을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소퍼 박사 등은 이번 연구에서 구석기인들이 직물을 이용한 흔적뿐만 아니라 직물을 디자인한 흔적까지 발견했다. 엉덩이에 낮게 걸치거나 허리에서 끈으로 묶도록 되어 있는 치마, 정교한 그물모자, 가슴에 대는 리본 등이 조각상에 표현되어 있었던 것이다.
비너스 조각상들은 지금까지 고고학자들과 인류학자들 사이에서 많은 연구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러나 이들 학자들이 내놓은 해석들은 거의 모두 커다란 가슴, 통통한 허벅지와 배, 분명하게 표현된 성기 등 신체의 특징이 과장된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따라서 학자들은 이 조각상들이 다산을 기원하는 주술에 사용된 물건이거나 선사시대의 에로물, 혹은 산부인과학의 교본이었을 것이라 추측했다.
아도바시오 박사는 “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이 조각상들을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대부분 옷을 옷으로 인식하지 못했으며, 설사 옷을 알아본 경우에도 가슴에 대는 리본을 문신이나 보디 페인팅의 일종으로 보는 등 잘못된 해석을 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1908년에 오스트리아 남부에서 저 유명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가 발견되었을 때, 학자들은 이 조각상의 머리에 코일 모양의 문양이 매우 세심하게 조각되어 있는 것에 주목하고 이 문양이 구석기시대의 헤어스타일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직물과 바구니 세공 분야의 권위자인 아도바시오 박사는 이 문양이 ‘방사형으로 짠 머리장식’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아도바시오 박사는 이 머리장식이 “오늘날 뉴욕 거리의 자메이카인들이 쓰고 있는 모자와 아주 비슷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퍼 박사 등은 12월초에 플로리다대에서 열린 한 학술모임에서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아도바시오 박사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우리가 그토록 오랫동안 왜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했지?’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다양한 머리장식 눈길▼
그러나 지금까지 모든 학자들이 비너스 조각상이 입고 있는 의류들을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옥시덴탈대의 엘리자베스 웨이랜드 바버 박사는 1991년에 발표한 책 ‘선사시대의 직물’에서 비너스 조각상들 중 일부가 훌라 댄서의 옷처럼 길다란 끈을 이어 만든 치마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데 한 장(章)을 할애하기도 했다.
이들의 연구결과는 또한 바버 박사가 ‘끈 혁명’이라고 명명한 사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고고학자들은 지금까지 인간의 문화가 진보하는 데 있어서 석기와 철기 등 무거운 도구의 발명이 지닌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따라서 각 시대의 이름도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등으로 명명되어 있다.
▼식물에서 '끈'만든 주역▼
그러나 문명의 발전에 있어 무거운 도구의 발명만큼 중요했던 또 하나의 사건은 식물을 먹는 것 외에 다른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끈을 발명하고 방직 기술을 얻게 되면서 사람들은 음식을 운반하거나, 저장하거나, 요리할 수 있는 정교하고 가벼운 용기들을 만들 수 있었다. 또한 어머니가 아기를 안전하게 데리고 다닐 수 있는 일종의 포대기가 발명되어 여성들이 자유롭게 일을 하거나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아도바시오 박사는 “끈 혁명은 인간의 역사에서 매우 의미 심장한 사건이었다”면서 “사람들이 식물을 가지고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진보에 전혀 새로운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http://www.nytimes.com/library/national/science/121499sci-archaeology-women.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