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식의 과학생각]기도는 神이 준 '정신강장제'

  • 입력 1999년 12월 16일 19시 28분


루르드는 프랑스에서 호텔이 두 번째로 많은 곳이다. 해마다 몰려드는 500여만명의 방문객들로 360여 개 호텔은 발디딜 틈조차 없다.

1858년 피레네 산기슭의 작은 마을에 살던 한 소녀가 동굴에서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보았는데, 마리아의 가르침에 따라 동굴 안에서 솟는 샘물로 목욕을 해 천식을 고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가 루르드는 1억명에 가까운 순례자가 다녀가는 성소가 된다. 특히 나이 어린 정신박약아와 지체부자유자, 병든 노인, 휠체어 신세의 젊은이 등 기적처럼 병이 낫기를 바라는 환자들로 붐빈다.

일부 과학자들은 종교적 신앙이 질병 치유에 효험이 있다고 주장한다. 대표적 이론가는 하버드대 의대의 허버트 벤슨. 그는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 주요 종교들이 기도나 주문을 계속 반복하는 방법으로 이완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완 반응이란 스트레스를 받을 때의 생리적 변화와 정반대 되는 생리적 변화를 말한다.

가령 스트레스를 받으면 혈압이 오르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노르에피네프린이 활성화하지만, 기도를 하면 혈압이 낮아지고 노르에피네프린의 효과가 줄어든다. 요컨대 기도나 주문을 반복하면 결과적으로 자신의 이완반응을 유도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해소하여 병에 걸릴 확률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어떤 질환이 스트레스에 의해 발생하는지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지만 고혈압, 위궤양, 류머티스성 관절염, 궤양성 대장염 따위의 만성질환이 일상생활에서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에 의해 발병하는 질환에 포함된다.

기도로 이완반응을 일으키면 질병이 치유되는 이유는 인체 내부의 자연 치유력으로 설명된다. 의학자들에 의해 인체가 질병과 싸워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을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게 갖고 있음이 발견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플라시보 효과이다.

플라시보(위약·僞藥)는 환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주는 가짜 약이다. 위약의 투여에 의한 심리 효과로 환자의 용태가 실제로 좋아지는 현상이 플라시보 효과이다.

루르드의 기적 역시 플라시보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특정 장소의 치유 능력을 확신하는 환자들이 그 곳을 방문하여 흥분 상태에 몰입할때 일시적으로 플라시보 효과가 발생하므로 자신의 병이 나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종교적 체험과 이완반응이 뇌의 같은 부위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를테면 이완반응은 정서를 관장하는 뇌의 영역인 변연계에서 편도핵에 의해 제어되는데, 수술 도중 편도핵을 전기적으로 자극받은 환자들이 천사 또는 악마를 보았다고 털어놓았다. 약물 과용으로 변연계를 만성적으로 자극한 사람들은 곧잘 종교적 환상에 빠져든다.

신앙생활이 건강에 유익하다는 증거는 속속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기도의 효험에 대한 믿음은 절대적이다. 1996년 ‘타임’지에 따르면 미국인의 82%가 기도를 하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하느님이 중환자를 치유하기 위해 때때로 개입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73%에 이른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모두가 반드시 기도를 할 필요는 없다. 명상을 하면 기도처럼 이완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세밑에 기도나 명상으로 세상일을 잠시 초월해보면 어떨까.

이인식(과학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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