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삶의 막장이 닫히지 않도록'

  • 입력 1999년 12월 16일 19시 28분


깊어가는 세밑, 우리 사회의 명암(明暗)이 뚜렷하다. 한쪽에서는 하룻밤 1000만원 이상을 쏟아붓는 망년회가 벌어지고 고급호텔과 백화점은 발 디딜 틈 없이 북적대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헐벗고 굶주린 이들이 당장의 끼니를 걱정하고 있다. 증권사마다 억대 연봉자가 줄줄이 쏟아지고 증권으로 떼돈을 번 사람들이 화제인 가운데 그 뒤편에서는 노숙자의 행렬이 이어진다. 한쪽에선 IMF위기를 ‘완전 극복’했다고 공언하고 올해 예상 경제성장률이 9%를 넘어 오히려 과열을 걱정해야 할 정도라고 하지만 가난하고 불우한 이들에게는 여전히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뿐이다. 그들에게는 그 어떤 장밋빛 미래보다도 오늘의 어려움을 견뎌낼 수 있는 ‘한줌의 온정’이 절실하다.

그러나 흥청대는 세밑 풍경에서도 온정은 점점 줄어드는 세태다. 구세군 자선냄비에는 12월13일까지 2억6900만원이 들어왔다. 오는 24일까지 14억5000만원을 모금하기로 한 목표액의 19%에 지나지 않는다. 국내 유일의 법정 민간모금활동기구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경우도 다를 게 없다. 지난해에는 연말까지 164억원을 모금했는데 올해는 12월14일 현재 모금액이 고작 16억9000여만원이라고 한다. 이 모금회는 그동안 총모금액의 75% 가량을 기업으로부터 도움받았다고 하는데 올해 대부분의 기업들이 큰 수익을 올렸음에도 기부에는 등을 돌리고 있는 것 같다고 관계자는 말한다. 본사를 비롯한 각 언론기관의 불우이웃돕기 성금접수창구도 썰렁하기만하다.

물론 빈곤층의 복지문제를 기업에 기대어 풀려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정부차원의 복지대책이 여전히 미흡한 현실에서는 ‘이윤의 사회적 환원’이란 측면에서 기업의 일정한 역할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전 공개된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도시빈민인구는 97년 9%에서 98년 19%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밥굶는 아이들’도 1년 새 1만2000명이나 더 늘어나 15만여명에 이른다. 경제위기를 극복했다지만 절대빈곤층은 오히려 증가하고 그에 따른 빈부 양극화가 점점 구조화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불우이웃을 돕는 일은 단지 남의 일이 아니다.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한다면 그 눈물은 바로 공동체의 모두에게 되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갈 데 없는 이들의 삶터인 경기 시흥시 ‘베다니의 집’ 이호성목사의 기도에 귀기울여 보자.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한번만 뒤돌아봐 주세요. 삶의 막장이 닫히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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