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북스]최우석/'삼국지'

  • 입력 1999년 12월 17일 19시 23분


▼ '삼국지' 이문열 평역/ 민음사 펴냄 ▼

삼국지는 언제 읽어도 재미있다. 그러나 읽기에 따라 조금씩 맛이 다르다.

대개 젊어서는 재미위주다. 영웅 호걸들이 벌이는 무용담과 참모들의 지략에 넋을 빼앗긴다. 이땐 유비의 촉나라가 중심이 되고 조조의 위나라는 항상 깨지는 쪽에 속한다. 제갈공명이 귀신같은 꾀를 내고 관우 장비가 앞장 서 조조의 군사를 깨뜨리면 통쾌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세상물정을 짐작하게 되면 삼국지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 무용담에서 벗어나 삼국지의 무수한 등장인물의 역할과 그들의 인간관계에 더 흥미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땐 유비를 무조건 응원하고 제갈공명을 귀신같이 보기보다 두사람간의 관계에 더 주목하게 된다. 1인자와 2인자간에 어떻게 그토록 오래 신뢰가 유지될 수 있었을까, 선대(先代)의 사람이었던 공명이 어떻게 후주(後主)대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가 새로운 관심거리가 된다.

위나라의 조조나 사마중달도 다시 한번 보게 된다. 맨날 나쁜 짓만 하고 터지는 역할만 하던 조조가 실은 통이 크고 문무겸전의 출중한 지도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죽은 공명에게마저 쫓겨간 사마중달이 진짜 훌륭한 장수요, 전략가라는 것도 새삼 느끼게 된다.

또 조조 유비 손권의 국내 정치와 외교 전략은 어떠하며 인간적 매력은 어떠한가, 오늘날 한국에 태어났으면 누가 대권을 잡고 누가 최대의 기업그룹을 창업했을 것인지도 상상해 볼 수 있다.

군신간의 관계도 창업에서 수성(守成)으로 옮겨감에 따라 달라진다. 창업할 땐 싸움 실력이 최우선이지만 차츰 질서가 잡히면 적응력이 중시된다. 이땐 이재(異才)보다 남과 잘 지내고 조정능력이 뛰어난 능리형(能吏型)이 판을 친다. 따라서 시대의 변화에 따라 부단히 변신해 가는 사람은 살아남고 옛날 상종가(上終價)때 생각만 하는 사람은 비참한 종말을 맞는 것이다.

삼국지에서 일어난 일들은 그 뒤에도 몇번이나 일어났고 지금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삼국지는 동양의 고전으로 널리 읽혀 왔다.

삼국지라면 대개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지연의(演義)를 번안한 것을 일컫는다. 이 책은 재미 위주다. 여기다가 정식 기록이라 할 수 있는 진수(陳壽)의 삼국지를 곁들여 만든 것이 작가 이문열 평역의 삼국지다.

역자가 탁월한 글솜씨로 군데군데 해설식 촌평까지 곁들여 재미도 있고 보는 눈도 넓혀준다. 소설가 박종화 김홍신씨의 삼국지와 같이 읽으면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최우석 (삼성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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