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경택칼럼]누구 탓인가?

  • 입력 1999년 12월 17일 19시 23분


세밑이 너무 소란스럽다. 마치 세기말 혼돈이 밀려오는 듯하다. 대통령의 정치자금수수 사실을 밝힌 국가정보원장의 말 한마디로 정국엔 다시 격랑이 일 것 같다. 검찰에도 옷사건수사팀과 수뇌부간의 갈등으로 긴장감이 팽팽하다. 총선은 4개월도 안 남았는데 선거법은 여전히 안개속이다. 그러면서도 모두들 ‘네 탓’ 타령이다. 새천년이 열흘 남짓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우리 앞은 여전히 흐리다. 희망의 빛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다시 DJP 연합으로▼

우선 새정치를 하겠다는 신당의 모습도 과거 정권에서 때가 묻을 대로 묻은 사람을 ‘지명도’와 ‘당선 가능성’을 이유로 모셔가는 것을 보면 그 정체성(正體性)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신당이 뜨지 않으니까 여권이 합당을 서두르는 모양이다. 합당을 위해서는 통합신당의 총재로 김종필(金鍾泌·JP)총리를 모셔와야 한다는 얘기다.

신장개업을 하려면 ‘오너’야 바뀌지 않더라도 간판이라도 새롭게 꾸며 달아야 할텐데 새 신(新)자 신당 이미지와는 영 거리가 먼 JP를 앞세운다니 보기에 민망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JP가 참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하튼 여권으로서는 누구의 이미지가 어떻고를 따질 겨를이 없다. 다시 97년 대선 때의 승리전략인 DJP연합으로 내년 4월총선에서 이기고 봐야겠다는 계산뿐인듯 싶다.

사실 지난 대선때 JP는 김대중(金大中·DJ)후보의 취약점을 상당부분 보완해줬다. DJ가 정치인으로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차례 낙선의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대략 세 가지로 요약되곤 했다. 자타가 다 아는 얘기지만 첫째는 호남이라는 지역적 한계, 둘째는 색깔론에 의한 피해였다.

이 두 가지는 지역적으로 충청도요, 사상적으로는 우익보수주의자인 JP와 손을 잡음으로써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었다. 그러나 세번째는 본인 면전에서 얘기하기 쑥스럽고 JP로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사항이다. 뭔가? 오랜 군부독재 정권하에서 악의적으로 부풀려졌다고는 하지만 ‘신뢰성에 대한 의문’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약속을 안 지킨다(말을 자주 바꾼다), 뭔가 투명하지 못하다, 솔직하지 못하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지난 2년 동안 김대통령은 어떠했나. 여전히 솔직하지 못하고 불투명한 부분이 적지않았다고 본다. 이 때문에 그동안 경제 외교분야에서의 실적에도 불구하고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김대통령의 인기가 뚝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는 게 아닐까.

불투명하고 솔직하지 못한 것은 JP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예가 내각제 연내개헌 유보를 둘러싼 두 분의 자세였다. 애당초 지켜질 수 없는 공약을 파기하는 과정의 애매모호한 태도도 그렇지만 유보를 결정한 후 국민에게 사과하는 형식이나 모습도 결코 진심에서 우러난 진솔한 것이 아니었다. 최근 두 여당의 합당문제를 놓고 ‘정치 9단’들이 주고받는 수수께끼같은 얘기들은 국민과 당원을 혼란스럽게 한다. 한쪽에서 운을 띄우면 상대편에서는 ‘아니오’라고 하는듯 하다가는 다시 뒷거래가 있는 듯한 말을 흘려보낸다.

▼"이런 것은 잘못했다"▼

내각제 개헌유보 결정을 할 때도 그랬지만 정당의 의사결정이 민주적 방식과 절차와는 거리가 먼, 밀실에서의 밀담이나 선문답, ‘몽니’와 거듭되는 말바꾸기를 통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투명한 정치가 아니다.

올해 우리 사회의 키워드는 ‘거짓말’이 아닐까. 그것도 고위공직자나 그 주변사람들이 아무 죄책감 없이 거짓말을 반복하는 사회, 그런 풍조는 어디서 생겨났나.

김대통령은 당선 2주년이 되는 내일 TV방송에 출연해 대담을 한다는 예고다. 이번 대담에서는 2년의 업적 자랑이나 실책에 대한 변명, 정치권과 일부 언론이 개혁의 발목을 잡는다는 불평보다는 지난 2년간 뭐가 잘못됐는가를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훨씬 호소력이 있을 것이다.

“한 2년 열심히 한다고 했으나, 생각보다 민심을 제대로 읽기가 쉽지않고 읽어도 그에 딱 맞게 국정을 펴기가 어려운 이런저런 사정이 있었다. 솔직히 이러이러한 것은 내가 판단을 잘못한 것이다. 사람을 잘못 쓴 부분도 없지 않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DJ는 2년전 12월19일 당선소감에서 정직한 대통령이 될 것과 투명한 국정을 펼 것을 약속했다. 이 약속을 되새기면서 새해를 맞기 바란다.

어경택〈논설실장〉euh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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