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전 76년 8월1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건국후 처음으로 조국에 올림픽 금메달을 바친 ‘영원한 올림픽스타’ 양정모(46).
당시 23세의 청년에서 이제는 불혹의 중년이 된 그를 만났다.
그는 선수와 지도자로 25년간 몸담았던 조폐공사 레슬링팀이 지난해초 해체되면서 명예퇴직을 했다. 올림픽 첫 금메달리스트로 온 국민을 열광시킨 그였지만 ‘경제 한파’를 비켜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경제한파'로 팀 해체…25년 몸담은 곳서 명퇴▼
“처음엔 아주 허전했어요. 갑자기 공중에 붕 뜬 느낌도 들었죠. 그러나 될수록 일찍 일어나 활동을 많이 하면서 허전함을 잊고 지냈습니다.”
그는 실직 이후 운동때문에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옛 친구들을 무척이나 많이 만났다. 반기는 사람이 있다면 어느 곳이든 마다않고 한달음에 달려간다.
“친구들에게서 세상 얘기를 많이 들어요. 운동만 했으니 모두가 별천지 얘기 같아요. 주로 듣는 입장이죠.”
그렇다고 그는 스포츠 외길을 걸어온데 대해 후회같은 걸 해본 적은 없다. “모두 자기 분야에서 나름대로 성취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죠. 상대평가나 비교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무취미가 취미’. 너무 힘든 운동을 하느라 따로 취미생활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최근들어 유일한 낙은 등산.
“선수 시절 주말 외박 전날엔 항상 불암산에서 ‘지옥훈련’을 했죠. 요즘은 편안한 마음으로 산을 오르는데 옛 시절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요.”
외동아들 효영도 어느새 대학생이 됐다. “효영이가 스포츠 관전은 좋아하는데 하는 덴 관심이 없더라고요. 컴퓨터를 전공하고 있는데 시대 흐름이 그러니 잘 선택한 것 같아요. 덕분에 저도 틈틈이 배우고 있죠.”
▼"지금은 편한 마음으로 산오르며 옛생각 하죠"▼
요즘 들어 그는 생각이 많아졌다. 언제까지나 아무일 없이 있을 수는 없는 것. “사업같은 건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레슬링을 통해 새로 태어날 수밖에 없는데 현실적으로 팀 창단이 어렵잖아요.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도 없고…. 그래도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레슬링을 위해 뭔가를 해야죠.”
▼후배들에게…▼
운동을 하는 사람의 목표는 누구나 세계 정상입니다. 그러나 성공하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대부분은 실패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최선을 다한다는 사실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냉정하게 반성해봅시다.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 세상이치인 것 같습니다.
최근 프로스포츠의 인기는 하늘 끝까지 치솟고 있는 반면 아마종목은 아무리 메달 효자 종목이라도 인기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죠. 그렇다고 애국심이나 사명감에만 호소해서는 안돼요. 나 역시 좋아서 했고 운동을 즐겼습니다. 스스로 좋아서 할 수 있는 적극적인 사고방식이 필요합니다.
▼새천년 바람은…▼
새천년이라는 말은 사실 인위적이다. 시간은 저 혼자 흘러가는데 인간이 작위적으로 획을 그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시간의 흐름은 연장선상에 있다는 뜻이다.
새로운 세기가 온다고 지나간 세기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과거를 잊지말고 든든한 버팀목으로 삼아 새천년을 맞이해야 한다. 새천년은 좀더 희망적이고 밝은 세기가 됐으면 한다. 또 사람 사는게 모두 기복이 있는 만큼 순간의 좌절에 낙담하지 않고 용기를 가지고 생활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배극인기자〉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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