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인간은 그레고리력을 기반으로 ‘비트시간’이라는 새로운 ‘역법’을 만들어 냈다. 하루24시간을 1000으로 나눠 ‘@235’ ‘@491’ 등으로 표시한다. 스위스의 0시(한국시간 오전8시)가 기준이 되며 ‘시간의 1단위’는 1분26초4가 된다. 전세계를 시차(時差) 없이 연결하는 인터넷 가상공간에서 현실공간을 기준으로 한 시차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인터넷시간’이라고도 불린다.
▼ 스위스 '스와치'서 개발 ▼
이것은 시차의 불편함을 느끼던 새로운 천자(天子), ‘인터넷’의 심중(心中)을 헤아려 ‘스와치’라는 역관(曆官)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일개 시계회사인 스위스의 스와치사가 불경스럽게도 자기 동네를 기준으로 해서 만든 시간이지만 시차가 필요없는 인터넷에서 ‘인터넷시간’은 빠른 속도로 지지자들을 얻어 가고 있다.
▽시공간의 지배자〓‘아킬레스가 거북을 추월할 수 없다’ ‘날아가는 화살은 정지해 있다’는 등의 궤변을 펼쳤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제논. 매 순간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아킬레스, 거북, 화살은 매 순간 일정 공간에 ‘정지’해 있다는 주장이다. 그가 이런 억지를 부릴 수 있었던 것은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운동과 분리했기 때문이다. 시공간과 운동이 동시에 경험되는 현실과 달리 개념들을 분리하는 사고방식은 추상적 사고에 능한 인간의 재주 중 하나다.
뉴턴은 현실에서 분리해 낸 시간과 공간을 변치않는 절대시간 절대공간으로 만들어 ‘심오한’ 인간이 ‘단순한’ 시간과 공간의 지배자라는 착각에 빠지게 했다.
▼ '절대시간' 개념 무너져 ▼
▽무너지는 절대시간〓인간들 사이에 공통의 시간이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 공동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산업사회가 발달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분업을 통해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노동과 휴식 시간이 정확히 일치해야 했다. 이들에게 유용한 것이 바로 절대시간.
더욱이 인터넷에서는 철저한 절대시간인 인터넷시간이 빠른 속도로 확산된다. ‘빠른 자’의 승리를 주장하는 앨빈 토플러나 ‘생각의 속도’를 주장하는 빌 게이츠에 따른다면 지역별 시차는 별 의미가 없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이미 뉴턴의 절대시간이 허구임을 밝혀냈다. 운동속도와 중력에 따라 시간의 진행속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도 절대시간 속의 보편적 인간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참여하는 구체적 존재에 주목했다.
▼ 삶의 길은 '느림의 멋' ▼
▽열 손가락에서 나온 밀레니엄〓지금 전세계가 떠들고 있는 밀레니엄이란 인간의 손가락이 모두 열개라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손가락이 열개라서 십진법을 쓰게 됐고 그래서 100년마다, 1000년마다 열 손가락을 높이 들고 환호한다는 것이다. 밀레니엄의 기준이 되는 그레고리력도 인간이 사용해 온 수많은 시간계산법 중 하나일 뿐이다.
다같이 인터넷시간이나 그레고리력을 따른다 해도 한국인, 미국인, 중국인, 브라질인이 느끼는 삶의 속도는 여전히 다르다. 현실의 삶에서는 독일 뮌헨대의 시간생태학자 칼 하인츠 가이슬러나 체코 출신의 작가 밀란 쿤데라처럼 ‘느림’의 미학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호응을 얻고 개개인의 생체리듬에 따른 시간계산법도 유행한다.
절대시간은 인터넷에 새로 열린 길을 따라 빠르게 흐르지만 울퉁불퉁한 삶의 길에서는 상대적 시간 속의 서로 다른 ‘느림의 멋’이 여전하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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