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한국의 대들보, 검찰의 사명을 다짐하는 비장한 구호이다. 너무나 당연한 구호를 되풀이하여 듣다보니 이제는 제대로 실감이 들지 않는다. 믿음과 감동을 더더구나 주지 못한다. 마치 ‘대통령은 깨끗하다’는 말처럼 진부한 허사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나라의 불행은 시인의 행복이라(國家不幸詩人幸).’ 금(金)나라 유신 원호문(元好問)의 비장한 평시(評詩) 구절이다. 그 비가(悲歌)를 잠시 끌어쓰면 20세기 마지막 해 가을, 대한민국의 시인은 그래도 살맛이 났을 것이다. 법치국가 대한민국의 상징을 자처하는 검찰이 처한 위기를 보며 비장한 시심을 불태울 수 있었을 터이니 말이다.
▼권력은 부패 교훈얻어▼
2개월 이상 국민 모두의 관심이 집중됐던 특별검사 사무실들이 서둘러 문을 닫았다. 수사 결과 전직 검찰총장과 조폐공사 사장이 구속됐다. 감추어졌던 사실들이 더러 밝혀졌다. 엇갈린 세간의 반응이다. 그래도 할만큼 했다는 격려를 보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처음부터 예상된 한계라는 비관파도 있다.
심지어 모두가 ‘짜고 치는’한 판이라는 냉소파도 적지 않다. 정치적 성격이 더욱 짙은 파업유도사건은 더욱더 그러하다. 당초 수사팀의 구성을 두고서도 논란이 컸다. 현직 검사를 수사관에 동참시킴으로써 특검제를 도입한 근본취지 자체가 오도됐다.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없는 성격의 사건이었기에 난항 끝에 도입된 특검제가 아닌가. 어쩌면 수사의 대상이 돼야 할 검찰이 전문기관의 공조(共助)라는 명분으로 수사팀에 합류한 것은 논리의 모순이다. 급기야 이 제도의 도입을 줄기차게 주장했던 재야 시민단체에서 파견된 수사관들이 팀에서 탈퇴했고 이들은 특검의 이름으로 정식으로 발표된 사실과 다른 또 다른 ‘진실’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든다.
정치보다는 행정이 본업이었던 정부관리 출신 사장 한 사람이 단독으로 이런 정치적 성격이 짙은 일을 했다는 발표를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니 노동계에서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도 납득이 간다.
어쨌든 늦게 찾아온 겨울의 시작과 함께 특검의 계절은 정식으로 막을 내렸다. 특검사무실이 당초 배정됐던 예산을 절반밖에 쓰지 못했듯이 당초 국민이 기대한 진실의 절반밖에는 얻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래도 얻은 것이 있다. 지루한 일련의 절차를 통해 보다 중대한 교훈을 얻은 것이다. 모든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따라서 권력자는 진실을 은폐하려는 속성이 강하다는 것을 알았다.
▼국민 권력감시 나서야▼
지루한 청문회와 각종 수사기관의 조사에서 밝혀진 사실이 무엇인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너나 할 것 없이 권력과 연루된 사람은 모두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자처하는 사람조차도 하나님을 걸고도 거짓말을 밥먹듯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진짜 진실’을 밝히려면 하나님을 소환해야 할 판이라는 수사기관의 자조와 함께, 이 땅에서는 하나님도 소환 당하면 거짓말을 할 것이라는 국민의 냉소가 돌고 있다.
특검절차를 통해서도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권력의 몸체와 연결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구속중인 전직 검찰총장이 굳이 입을 다물어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이 몸담으려 했던 보다 큰 권력이 아닐까.
세기가 바뀌는 이 시점에 우리는 다시 한번 다짐해야 할 일 있다. 모든 권력은 감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권력은 분산돼야 하고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거짓말이 쉽게 발각되는 제도, 권력자의 거짓말이 부패와 야합하는 것을 방지하는 사회제도를 건설할 것인가를 고심해야 한다.
이제 모든 국민이 권력의 감시에 나서야 한다. 권력을 감시하는 시민운동에 참가하고 육성해야 한다. 세금을 내어 나라를 운영하듯이 성금을 내어 국가권력을 감시하는 조직적인 운동을 펴야만 한다. 이제 우리에게도 그런 시대가 왔다. 청와대에 전세든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집중된 권력, 그 권력을 지키기 위한 국가조직이 검찰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이미 우리는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나머지 절반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모두가 진지하게 고심해야만 한다.
안경환<서울대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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