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영훈/朴柱宣씨와 드레퓌스

  • 입력 1999년 12월 21일 18시 38분


1898년 1월13일. 프랑스의 일간 로로르지(여명·黎明을 뜻하는 프랑스어)에 당시 페릭스 포르대통령에게 보내는 한 작가의 공개 서한이 1면 머릿기사로 실렸다. 이것이 그 유명한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는 제목의 서한으로 당시 프랑스 사회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프랑스의 알프레드 드레퓌스 육군대위 사건은 이렇게 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드레퓌스 대위 사건은 유대인을 싫어하는 상관들이 모의해 ‘마녀사냥’을 한 것으로 당시 프랑스사회는 그의 유무죄 공방을 놓고 편이 갈려 심각한 내홍(內訌)을 겪었다. 이때 반유대주의와 군부 및 사법부의 마녀사냥을 용기있게 고발한 작가가 바로 에밀 졸라다.

‘드레퓌스 사건’을 장황하게 언급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옷로비 사건에서 불거진 문서유출 및 축소보고 혐의를 받고 있는 박주선(朴柱宣)전대통령법무비서관이 20일 밤 조사를 받고 풀려나면서 “잠시 광풍(狂風)에 빠졌던 드레퓌스대위의 고뇌를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박전비서관과 드레퓌스대위의 처지가 과연 닮았을까.

한 소장검사는 “박전비서관은 지금도 ‘반쯤은 살아있는 권력’인데 드레퓌스대위와 자신을 비교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박전비서관의 총명이 흐려진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박전비서관을 무척 총애했다. 김대통령이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며 쉴 때 그 누구도 보고를 할 수 없었지만 ‘단 한 명의 예외’가 박전비서관이었다고 한다.

박전비서관의 ‘드레퓌스 발언’은 묘하게도 김대통령이 6월 러시아방문을 마치고 돌아올 때 옷로비 사건으로 당시 여론의 도마에 오른 김태정(金泰政)법무부장관을 두둔하면서 “(언론이)마녀사냥을 해서는 안된다”고 한 말을 연상시킨다.

<최영훈/사회부 기자> c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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