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304)

  • 입력 1999년 12월 23일 11시 54분


그는 내 앞치마를 걸치고 있더군요. 이케아에서 아무 생각없이 집어 온 건데, 앞 자락에 크고 작은 딸기 무늬를 박은 그 앞치마였거든요. 이 선생이 식탁 위에다 냄비를 콜크 받침과 함께 얹고 식기를 늘어 놓았어요. 나는 냄새 때문에 참지 못하고 담요를 둘러쓴채로 식탁 앞으로 슬슬 굴러 갔지요.

그가 냄비 뚜껑을 열고 국자로 떠서 그릇에 담았어요. 그건 정말 기적 같은 콩나물 국이에요. 그리고 하얀 잣죽과 어디서 생겼는지 총각김치와 고들빼기 까지 있어요. 나는 뜨거운 국물을 숫가락으로 떠 넣으면서 저도 모르게 하, 하는 깊은 숨을 내쉬었답니다. 알맞게 간이 든 멸치 국물이며 고춧가루가 발갛게 갈아앉아 있어요. 그는 내 맞은편에 앉아서 무슨 학부형처럼 빙긋이 웃으면서 바라보고 있구요. 나는 그냥 국물을 연신 떠넣었어요. 이 선생이 자기도 한번 떠 먹어 보면서 말했습니다.

여기선 독감에다 한 자를 더 붙여 말해요.

무슨 자….

외로울 고라고 아시는지.

그건 맞는 거 같은데….

웬만한 병은 그래서 우리 음식 먹으면 반은 낳는다지.

국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죽도 아삭아삭 총각김치에 짭조름한 고들빼기 곁들여서 한 그릇을 비웠죠.

도대체 무슨 마술을 부린 거예요, 이 김치들은 어디서 났어요?

식품점에서 샀다면 실망하겠죠.

하여튼 콩나물 국은 대단했어요.

나는 콧등에 송송 돋은 땀을 내프킨으로 닦으면서 중얼거렸구요.

자아, 이젠 설거지를 할 차례군.

그가 그릇들을 챙기려고 일어났고 나는 말렸어요.

좀 두어 두세요. 나중에 내가 할게요.

봉사는 일습으로 해 둬야 어느 날 한턱 얻어 먹을 때도 푸짐해지죠.

다시 그릇이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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