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전진우/여성의원의 단식농성

  • 입력 1999년 12월 23일 18시 52분


1913년 6월4일 영국 여인 에밀리 데이비슨은 경마장 한복판에 뛰어들어 국왕 소유의 말에 밟혀 죽었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이 여성참정권을 위한 ‘순교(殉敎)’라는 것을 알았다. 이 놀라운 죽음은 1903년 에밀린 팽크허스트라는 한 부인이 여성사회정치동맹을 결성하고 벌여온 여성의 ‘즉각적인 참정권 요구’ 운동의 클라이맥스였다. 이 결의에 차고 용기있는 여성들은 항의 표시를 위해 우편함에 잼을 부어넣는가 하면 전신용 전선을 절단했고 공공시설에 불을 질렀다. 그들은 게릴라였고 전사(戰士)였다. 감옥에 갇히면 그들은 단식으로 투쟁을 계속했다.

▽드디어 1918년 1월 영국의 여성들에게도 투표권이 주어졌다. 하지만 30세 이상에 한해서였고, 남성과 마찬가지로 21세 이상이면 누구나 투표권을 행사하기까지는 그로부터 1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미국에서도 여성참정권을 쟁취하는 과정은 험난했다. 시위와 단식투쟁이 이어졌다. 1920년 8월 미국 여성들은 투표할 수 있는 권리를 얻어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성참정권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보장됐다. 필리핀(1937년)이나 일본(1946년) 중국(1947년)보다는 늦었지만 스위스는 1971년에야 여성참정권이 인정됐고 몇몇 나라에서는 아직도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고 있다.

▽싹수머리와 소갈머리를 한데 섞은 듯한 ‘싸가지’ 발언에 발끈한 여성 야당의원이 국회의사당 안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모습은 그 입장에는 충분히 공감한다 해도 보기 좋은 그림은 아니다. 막말을 해댄 남성 여당의원이 뒤늦게나마 공개사과를 하기로 했다니 그쯤에서 ‘용서’하는 것도 여성의 ‘관용’이 아닐는지. 그나저나 새로운 천년의 시대를 맞는다는 판에 아직도 ‘구시대적인 만용’을 부리는 남성의원이 있다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전진우 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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