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은 버리고 가자]김경일/변화 가로막는 '舊시대 문화유산'

  • 입력 1999년 12월 23일 18시 59분


언제나, 문명의 발전은 ‘정통에 대한 거부’로부터 매듭이 풀리곤 했다.

우리는 알고 있다. 처음에는 생경하고 거칠게 보일지 몰라도 매너리즘에 빠진 사회에 던지는 ‘반기’의 목소리들이 시간이 흐르면 역사의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잡는 현상을.

우리 사회는 매너리즘에 빠진 정도가 아니라 썩어 흐물거리고 있다. 나름대로 변화의 몸부림은 있었지만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그 동안의 시도와 몸부림들이 사실은 표피적인 것이었고 일과성에 그쳤기 때문이다. 문화와 역사를 깊이 살피지 못했던 불찰 때문이었으며,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언 발에 오줌만 누며 버텨온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러면 새로운 역사와 살아 있는 문화를 가능케 할 목소리는 어디에서 들려와야 하는가? 그것은 수백년 긴 세월, 우리 삶의 양태와 의식에 심연처럼 자리하고 있는 ‘문화적 구체제’의 폐해를 향해 던지는 비판에서 비롯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문화란 살아있는 자들이 향유해야 할 삶의 터전이지 산 자들의 희생 위에 세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세계 문명의 전환은 너무도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21세기 변화의 핵심은 ‘사람’에 있다. ‘사람’의 삶이 보장되는 새로운 가치와 패러다임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진정 인간다운 삶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과제가 21세기 우리 사회에 주어진 것이다. 자유와 평등, 공평함과 투명성에 기초한 삶의 가치는 이제 지구촌 어느 지역, 어느 민족도 피할 수 없는 글로벌 스탠더드다. 그리고 그것은 냉정한 경쟁을 요구할 것이며 진 자와 이긴 자를 분명하게 구분해놓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삶과 의식에 촘촘히 스며들고 뿌리내린 문화적 구체제가 남긴 유산의 역기능을 비판하는 일에 조금도 주저할 수 없게 된다. 혈연 학연 지연을 매개로 한 파벌문화와 수직적 윤리, 남녀차별, 허세와 위선 등 우리들이 추구하는 맑은 삶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문화적 유산들. 아득한 농경시대의 낡은 가치관을 품에 안은 채 21세기로의 길을 떠나려는 우리들은 진정 어리석은 자들이다.

일찍이 문화적 구체제의 폐해를 털어버리고 이미 국제사회의 핵심에까지 이른 일본과 중국. 그들의 무서운 성장과 도약을 보면서도 우리는 무엇을 버려야 할지 깨닫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들은 이미 자구적 자생적 삶의 터전이 될 ‘일본인들의 문화’와 ‘중국인들의 문화’를 창조해가고 있다. 멀지 않은 훗날, 그들은 먼지가 풀풀나는 헌 옷을 완전히 벗어버린 후 전혀 새로운 문명의 옷을 입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세계가 도덕적 갈증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우리 식 문화로 되돌아설 것이라는 이야기는 시대와 문화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써대는 일방적 연애편지일 뿐이다. 서구의 어리석은 물질주의자들이 마침내 백기를 들고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순례 차 찾아들 것이라는 희망은 차라리 한 편의 슬픈 동화일 뿐이다.

꿈에서 깨야 한다. 자기 최면에서 벗어나야 한다. 서구의 수많은 학자들이 이미 중국 일본의 새로운 문명적 변환에 주목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국제사회의 지식인들이 미국과 중국, 일본을 꼭지점으로 한 ‘태평양 트라이앵글’을 새롭게 그리며 한국에 던지는 비아냥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시애틀의 한복판에서 나는 ‘지금도’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할 ‘살림의 문화’는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글을 쓰고 있다.

김경일(상명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미국 워싱턴대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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