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대부분의 도로 구조물은 ‘위험상태’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그나마 현재 설치돼 있는 충격흡수시설도 대부분 법이 규정한 안전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불법시설물’인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17%만 설치돼◇
▼부족한 충격흡수시설▼
교통문화운동본부(대표 박용훈·朴用薰)가 9월 부터 11월까지 서울 시내 도로의 구조물 안전실태를 조사한 결과 도로 중앙이나 차로 옆에 구조물이 세워져 있어 차량의 충돌이 우려되는 곳이 2000여 군데나 됐다.
그러나 이 가운데 충격흡수시설이 설치된 곳은 전체의 17%인 341곳에 불과했다.
건설교통부의 ‘도로안전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에 따르면 시군구 등 도로를 관리하는 행정기관은 교각 터널 및 지하차도 입구 등 차량 충돌 사고가 예상되는 곳에는 반드시 일정한 기준에 부합하는 충격흡수시설을 설치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이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
◇작년 사망자 19%차지◇
그나마 서울 영등포구 양화동 양화교의 교각 등 서울 시내 도로 가운데 30여곳의 충격흡수시설은 10여년 전에 설치된 폐타이어나 폐고무통 등이 고작이었다.
교통문화운동본부는 충격흡수시설이 있었으면 훨씬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안타까운 사고가 해마다 수천건씩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10월 10일 오후 서울 은평구 진관내동 구파발 검문소에서 구파발삼거리 쪽으로 달리던 승용차가 콘크리트 방호벽을 들이받는 사고로 운전자가 숨졌다. 당시 차량 속도는 50∼60㎞.
교통전문가들은 “방호벽면에 충격흡수시설이 있었다면 운전자가 생명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집계에 따르면 98년 한해 동안 차량이 도로 구조물을 들이받은 사고가 전국적으로 1만318건에 이르렀고 이로 인해 1949명이 숨졌다.
이는 사고 건수로는 인명피해가 발생한 98년 전체 교통사고(23만9721건)의 4%에 불과하지만 사망자는 전체(9057명)의 19%에 해당하는 것이다.
서울의 경우 입체교차로 건설 등으로 도로상의 ‘위험 구조물’이 갈수록 늘고 있다. 이에 따라 구조물 충돌사고도 97년 435건(69명 사망)에서 98년 543건(84명 사망)으로 증가했다.
▼안전도 문제▼
현재 국내에는 건교부 지침에 따라 충격흡수시설의 성능검사를 할 수 있는 시설이나 기관이 하나도 없다.
◇안전기준 미달품 많아◇
이 때문에 현재 설치돼 있는 충격흡수시설이 충돌사고가 발생했을 때 제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서울의 경우 현재 설치돼 있는 충격흡수시설은 대부분 A사의 폐타이어드럼통 제품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용훈 교통문화운동본부 대표는 “당장 비용이 들더라도 차량의 충돌이 예상되는 지점에는 빼놓지 말고 충격흡수시설을 설치해야 사고로 인한 더 큰 낭비를 줄일 수 있다”며 “충격흡수시설의 안전성능을 검사할 공인 연구기관의 설립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