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新위기론'의 허와 실

  • 입력 1999년 12월 26일 21시 08분


‘안정론’이 여권의 새로운 화두(話頭)로 떠오르고 있다. 이를 뒤집으면 곧 ‘위기론’이 되듯이 안정론이 이처럼 급부상하게 된 데는 무엇보다 여권의 위기의식이 크게 작용한듯 하다. 오랫동안 하니, 못하니 진통을 겪어오던 국민회의와 자민련간 통합이 물건너가고 내년 4월 총선이 사실상 ‘1야(野)2여(與)’구도로 치러지게 된 데다 공동여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은 내림세다. 두 여당이 연합공천을 통해 공조를 계속한다지만 총선의 속성상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막상 선거에 돌입하면 두 여당이 서로를 공격하는 등 피차 1대2의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면 야당인 한나라당이 다시 원내 제1당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여권의 위기의식이다.

여권은 야당이 원내 다수당이 되면 정국이 불안정해져 IMF위기를 극복해낸 국가경영성과가 무산될 것이라고 말한다. 또 마무리져야 할 각종 개혁작업에 어려움이 따르고 남북관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정치 경제적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내년 총선에서 반드시 여대야소(與大野小)가 돼야 하고 그런 만큼 여권에 다수표를 달라는 것이다.

안정적 국정운영도 필요하고 지속적 개혁과 경제발전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선거전략적 차원’에서 접근하면서 ‘새로운 위기’를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여권은 보다 신중한 자세여야 한다. 더구나 지난 10여년의 의정상황을 돌아보면 여대야소 때에는 집권여당의 독주로 인해 여야 대립이 격화됐고, 특히 여소야대(與小野大)를 인위적으로 뒤집었을 경우 오히려 정국 불안정이 심화됐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정국안정은 여야 정당의 국회의석수보다는 집권세력의 정치력에 달렸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하물며 여권은 ‘위기론’의 근원을 야당의 발목잡기나 반개혁 기득권세력의 저항에서부터 찾으려 해선 안된다. 오늘의 위기는 본질적으로 여권 내부에서 비롯된 것이다. 옷로비사건 등에서 빚어진 신뢰의 위기, 공동여당 내의 소모적 갈등, 여야간 끝없는 정쟁(政爭) 등의 근본적 책임은 현 여권 및 집권세력에 있다.

그렇다면 ‘위기론’을 들먹이기보다는 이제라도 진정한 민의(民意)를 묻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민주적 공천에 의해 참신한 후보를 내세우고 정략보다는 정책대결을 통해 유권자의 뜻을 물어야 한다. 공명선거로 당당히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 결과가 야대여소라 할지라도 그것이 국민의 뜻이라면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는 각오를 보여야 한다. 여권이 이렇듯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면 국민도 이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국민은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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