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같은 제일은행이 국내 금융계에 유례없는 외국인 경영은행으로 다시 태어났다. 거듭났다곤 하지만 이 은행 하나를 위해 치러야 했던 대가는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다. 7조2700억원에 이르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겨우 5000억원에 지분의 51%와 경영권을 미국 뉴브리지캐피털그룹에 넘겨주었다. 앞으로 2∼3년간에 생기는 부실채권 및 추가 대손충당금도 공적자금에서 계속 메워나가야 한다.
이제와서 제일은행 매각경위와 조건을 따지는 것은 부질없다. 하지만 오랜 관치금융 및 그 보호와 특혜 속에 안주해 온 국내 금융산업이 우리 경제에 남긴 상처를 잊어선 안된다. 그리고 제일은행의 변신을 진정한 금융구조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제일은행과 함께 해외매각이 추진돼 온 서울은행도 매각될 때까지 외국투자회사들에 의해 경영된다. 두 은행에 대한 외국인 경영은 국내 다른 은행들로선 위기이자 기회다. 이들이 첨단 금융기법으로 시장을 파고 들면 여전히 자생적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토종은행’들로선 당장은 경영의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은행권 비은행권 가릴 것 없이 토종금융기관들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자기변신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고 이는 국내 금융산업 선진화를 촉진하게 될 것이다.
제일은행은 외국인 행장이 결정되자마자 일찌감치 다른 은행보다 1%포인트 높은 예금상품을 선뵈는 등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정부도 이를 ‘시장을 살리기 위해 시장에 개입한다’는 관치금융의 모순에서 발을 빼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토종은행들은 지금까지 나름대로 상품차별화를 꾀하다가 관치에 발목잡혀 주저앉곤 했지만 앞으로는 이들 은행이 역차별을 당해선 안된다.
차제에 재벌그룹들에도 촉구하고 싶은 게 있다. 고객의 믿음을 저버리고 계열금융회사들을 그룹의 사(私)금고화하는 등의 모럴해저드 행태에 스스로 마침표를 찍어 금융 건전화에 한몫을 해주기 바란다. 그래야 금융산업의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는 금융기관 국유화와 관치심화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이 더 넓게 열릴 수 있다. 그것이 우리 금융산업이 사는 길이고 우리 경제가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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