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년대엔 강고한 군부독재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어떠한 사건이라도 빌미를 잡아 그것을 확대 재생산하여 정권에 타격을 주는 방법이 유용했다. 70년대의 전태일사건과 YH여공사건, 80년대의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과 박종철군고문치사 사건이 모두 그랬다. 그런데 이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야 하는 시점에서도 그 습성이 고쳐지지 않는다. 새로운 비전도 없이, 실천도 없이 무조건 비판만 하고는 그리고 어쩌자는 셈도 없이 그걸로 끝이다. 또 다른 비판거리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그것 뿐인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한 사람들이 오히려 비판대열의 선두에 섰다. 운동권을 잡아 가두고 고문을 진두지휘하던 자가 그 운동권이 애용하던 빌미잡아 타격을 주는 수법을 그대로 모방하여 폭로전술을 마음껏 구가하면서 양심세력인양 행세하고 있다. 신문은 이런 모순에 대해서도 지적을 해야 한다고 본다.
이래 저래 비평가들만 난무하는 세상이다. 소설가는 몇사람인데 비평가는 몇십명이 되는 꼴이다. 어중이 떠중이 비평가들의 활개에 진짜 비평가들은 망연자실 펜을 놓고 있으니 그것이 더 큰일이다. 21세기는 빌미잡아 확대재생산하는 문제제기 방식이 국가와 사회에 더이상 유용하지 않은 시대가 될 것이다. 신문이 스스로의 비전과 안목으로 비평을 하지 않으면 어중이 떠중이 비평가들에게 끌려다닌다는 인상을 독자들에게 줄 수 있다.
21일자 A1면의 톱기사는 제목이 ‘정일순씨 구입 밍크코트 5벌 다른 고관부인들에게 전달 의혹’이었다. 필자가 특검보고서를 모두 살펴보고 김도형특별수사관에게 직접 물어본 결과 다소 과장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검보고서는 단지 밍크코트 5벌의 행방에 대해 조사해달라는 내용을담고 있을 뿐 고관부인들에게 전달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대목은 어느 구석에도 없었다.
지난번 칼럼에서 종합면을 정치일색에서 벗어나 다양하게 꾸몄으면 하는 부탁을 하였는데 이번주 신문의 종합면은 기획기사 국제 경제 사회 등 균형을 이뤄가는 경향이 보여 반가웠다. 사회면이 사건면에 머무르지 않게 해달라는 의견을 말했는데 20일자 ‘불량 내화자재 사용 화재 무방비’, 21일자 ‘스키장 안전 실태’, 22일자 ‘환경단속권 지방 이양 우려 목소리’, ‘간이과세 대상 상향조정 세제개혁 후퇴’, 23일자 ‘원조교제 철면피 아저씨들’, ‘특검이 특검다우려면 풀어야 할 숙제 7가지’ ‘사법개혁안 무늬만 개혁’ 등 기사들이 사회면의 체면을 세워주었다.
특히 20일자 ‘불량 내화자재 사용 화재 무방비’기사는 그 중요성에 비해 제목이 너무 밋밋했다고 본다. 바로 옆 ‘검사 이종왕 떠나가는가’라는 기사를 재밌게 읽었다. 다만 ‘TK출신으로서 김영삼정부 때 전두환 노태우씨의 수사는 잘못하는 일이라고 소신을 밝혔다’고 썼는데 TK 출신이 전두환 노태우씨 수사가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이 미화돼야 할 소신은 아닐 것이다.
박주현<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