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젠을 비롯한 소수의 건축가들은 현재 도시 시뮬레이션이라는 기술을 이용해서 자신들이 구상한 도시계획을 컴퓨터 스크린에 3차원 모델로 표현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최신 가상현실 기술들이 필요한데, 이 기술들 중 대부분은 군대의 비행 시뮬레이션 기술을 빌려온 것이다.
로젠은 “사람들은 건축 도면을 이해하지 못한다”면서 “그러나 나는 사람들이 가상현실 기술을 대단히 근사하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컴퓨터 스크린에 실현된 3차원 모델이 얼마나 자세한 것까지 표현하고 있는가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사람들은 대개 컴퓨터 게임을 할 때처럼 빌딩 위를 날아다니고 마음대로 방향을 바꾸면서 도시 모델 속을 돌아다닐 수 있다. 심지어는 마우스를 조작해서 도시의 모양을 바꿀 수도 있다. 일부 모델은 또한 데이터베이스에 연결되어 있어서, 어떤 건물을 선택하면 그 건물의 소유주와 주요 세입자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물론 제곱 피트 당 가격까지 알아볼 수 있다.
맨해튼에 있는 환경 시뮬레이션 센터의 마이클 크와틀러 소장은 이 3차원 모델들이 벌써부터 부동산 개발업자들의 사업 실행방식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맨해튼 소호 지역에 호텔을 짓고 싶어하는 부동산 개발업자의 의뢰로 소호 인근의 3차원 모델을 작성해준 바 있다. 크와틀러는 “우리는 그 지역 사람들에게 3차원 모델을 보여주고 모델 안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각도에서 풍경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면서 “결국 강제적인 명령이 아니라 사람들의 동의를 바탕으로 도시계획을 실행하는 것이 훨씬 더 쉬운 법”이라고 말했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이 3차원 모델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자세한 모습을 나타낼 수 있도록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컴퓨터 스크린의 가상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몇 년 전에 한 번 가봤던 이탈리아 식당을 찾아 그 식당의 메뉴를 살펴보고 예약을 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 또한 경찰서와 소방서가 가상 도시 안에 가상 지휘센터를 설립해 건물의 평면도와 소화전의 위치 등 중요한 정보들을 알려주게 될지도 모른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 도시 시뮬레이션 실험실의 빌 젭슨실장은 “이런 일들은 이제 공상의 영역을 벗어났다”면서 “우리는 경찰서와 소방서의 정보를 이용한 응급대처 계획을 개발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시 시뮬레이션 기술은 현재 그 커다란 설득력을 인정받아 국립 수도 개발계획 위원회는 건축가들이 워싱턴의 공유지에 대한 건설계획을 제출할 때 반드시 3차원 모델을 함께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이 위원회의 마이클 셔먼은 제2차 세계대전 기념관에 대한 건설 계획을 예로 들면서 “우리는 일찍부터 그 건물이 주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보행자의 시각에서 그 건물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예전처럼 건물의 축소 모형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보행자의 시각에서 건물을 바라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도시 시뷸레이션을 위한 도구들은 가격면에서 대부분의 건축가들에게 그리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비록 사진처럼 정확한 3차원 모델을 제작하려면 1만5000달러나 되는 유닉스 스테이션이 필요하지만 이렇게 정확한 모델을 추구하지 않는 건축가라면 펜티엄급 PC에 300달러짜리 그래픽 카드를 꽂아 작업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의 가격은 조금 비싸다. 3차원 세계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프로그램(오토데스크의 비즈, 벤틀리 시스템의 마이크로 스테이션, 멀티젠―패러다임의 크리에이터 등)과 실시간 시뮬레이션을 위한 프로그램(멀티젠―패러다임의 베가와 게임젠)의 가격은 모두 합해 약 1만5000달러쯤 된다.
그러나 일단 이 돈을 투자하고 나면 건축 과정에서 생기는 더 많은 돈이 드는 문제들을 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라스베이거스에 벨라지오 호텔을 짓고 있는 부동산 개발업자는 땅을 파헤치기도 전에 가상모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기초로 수백 번이나 설계를 변경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건축가들 중에는 3차원 시뮬레이션 기술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까지 그들은 일반 사람들이 설계도면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을 이용해서 부동산 개발업자들에게 이로운 개발계획을 은근히 지역 주민들에게 강요해왔기 때문이다. 크와틀러는 3차원 모델을 이용하면 “부동산 개발업자의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에 유혹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http://www.nytimes.com/library/tech/99/12/circuits/articles/16city.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