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수십년 동안 ‘꽃파는 처녀’를 중국과 동유럽지에서 공연해왔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경제력에 비해 해외에 우리 문화를 알릴 상품 육성에 인색했던 것이 사실이지요.”
제4회 일민예술상 수상자로 뽑힌 윤씨는 국내 창작 뮤지컬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며 우리 문화 상품의 세계화에 앞장 선 예술인으로 평가받고 있다.일민예술상은 동아일보명예회장이었던 고 일민 김상만(一民 金相万)박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일민문화재단이 매년 업적이 뛰어난 예술인 1명에게 주는 권위있는 상이다.
그는 일민예술상 수상에 대해 “‘명성황후’를 좀더 다듬어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 만들어 내라는 격려로 생각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상금 3000만원을 어떻게 쓸 것인가라고 묻자 “경기 수원에 살고 있는 아파트 전세값이 크게 올라 걱정했는데, 모처럼 가장으로서 어깨를 펼 수 있게 됐다”며 미소지었다.
‘명성황후’는 95년 서울 예술의전당 초연 이후 35만여명의 관객을 끌면서 국내 뮤지컬 붐을 주도해 왔다. 또한 97,98년 미국의 뉴욕 링컨센터와 LA 슈바트극장에서 동양권 창작 뮤지컬로는 처음으로 장기공연돼 호평을 받기도 했다.
새천년에도 세계를 향한 그의 발걸음은 분주하다. 3월말 중국에 이어 10월말에는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명성황후’를 올린다. 특히 호주에서는 처음으로 영어버전으로 공연된다. 영어 공연은 뮤지컬의 양대 산맥인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와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 진출하기 위한 사전 포석인 셈.
그렇다고 그가 ‘명성황후’에만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다. 백제시대 도미부인 설화를 소재로 한 뮤지컬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김수정의 애니메이션 ‘아기공룡 둘리’를 개작한 어린이 뮤지컬도 만들 계획이다.
요즘은 ‘뮤지컬 전문 연출가’란 소릴 듣는 그이지만 원래 77년 실험극장에 입단해 ‘아일랜드’ ‘들소’ ‘신의 아그네스’ 등 정통연극을 만들어왔던 연출가였다. 그러던 그가 변한 것은 84년 서른여섯살의 나이에 돌연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솔직히 술을 피해 떠났어요. 예나 지금이나 연극계 사람들은 공연이 끝나면 술로 시간을 허비하거든요. 점차 소극장 연출에 만족하고 매너리즘에 젖어가던 내 자신이 못 마땅해 무작정 떠났습니다.”
영국에서 1년, 미국 뉴욕대(NYU)에서 4년간 유학하면서 그는 수 백 편의 공연을 보았다. 공연을 보면서 신경 쓴 것은 무대 연출 뿐 아니라, 관객의 반응. 언제 흥분하고, 몰입하고, 감동하고, 기립박수를 치는지 철저하게 연구했다. 이렇게 해서 세계시장을 겨냥하는 그의 철저한 ‘관객 중심’ 연출 전략이 탄생했다.
‘명성황후’의 뉴욕 공연 추진 당시 “돈이 없으면 뗏목이라도 타고 가겠다”며 돈키호테식 고집으로 밀어붙였던 그에게 지금 남은 것은 8억원의 부채.
어느 정도 빚을 갚은 뒤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뮤지컬 전용극장을 세우는 일이다. 1회성 공연이 아니라 외국처럼 수 십년 간 작품을 다듬어 대작으로 키워내려면 장기공연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그는 일민예술상 수상기념으로 ‘명성황후’ 앙코르 공연을 2000년 2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가질 예정이다.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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