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한승주/'세계화 경쟁력' 키워야 살아남는다

  • 입력 1999년 12월 28일 19시 47분


한 세기를 보내면서 다가올 새 세기, 그리고 새 밀레니엄에 대한 예측이 분분하다. 흔히 20세기는 전쟁, 이념과 혁명, 그리고 기술혁신의 세기라고 말한다. 실제로 20세기에 들어와 인류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포함해 수백의 크고 작은 전쟁과 대규모의 양민 학살도 경험했다. 또 모든 나라가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의 위험속에 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세기에 대하여 낙관적인 생각을 갖기도 한다. 그 이유는 세계가 특히 국제관계에 있어서 21세기에는 그 전의 세기들과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기의 도래는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흥미 있는 것은 그것이 우연의 일치였는지, 또는 새로운 세기에 대한 기대와 인식의 결과였는지, 100년전 20세기를 맞을 때와 마찬가지로 21세기를 맞는 오늘은 하나의 시대적인 획을 긋는 전환적 시기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사적으로 볼 때 19세기말은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하여 자본주의 정책이 절정을 이루는 시기였다. 이념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가 본격적으로 정치운동화되는 시기였다. 국제적으로는 서방국가들의 제국주의 정책이 절정을 이루는 시기였다.

새로운 세기, 새로운 천년에도 인류는 과거의 역사를 반복할 것인가. 경제학자이며 사회학자인 조지프 슘페터는 제국주의를 논하면서 인류는 격세유전적인(atavistic) 행태를 보인다고 했다. 예컨대 큰 전쟁을 경험한 세대는 전쟁을 혐오하고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다음 세대는 전쟁에 대하여 낭만적인 생각을 갖기 때문에 전쟁은 세대를 거르면서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렇듯 역사가 반복된다는 인식은 아널드 토인비의 고전적인 저술 ‘역사의 연구’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충돌론’도 이러한 역사 반복론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우리 나라에도 잘 알려진 앨빈 토플러, 피터 드러커, 프란시스 후쿠야마 등은 역사의 반복성보다는 그 질적인 변화를 강조한다. 실제로 이들은 20세기의 종언(終焉)과 함께 지금까지의 인류사회와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양상의 세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토플러는 ‘제3의 물결’이라는 표현으로, 드러커는 ‘지식사회의 도래’라는 인식으로,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이라는 개념으로 각기 이념의 적실성(適實性)은 물론 경제구조, 인간 개개인의 성향, 사회의 성격, 국가의 본질, 문화, 국제체제 전반에 걸쳐 과거의 패턴과는 다른 모습의 세계가 전개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새로운 세기를 맞는 이 시점에 국제관계는 분명히 하나의 세계사적 획을 긋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특징지어야 할 것인가. 여러 가지 모델을 대체로 다음의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세계화이다. 이것은 국가간의 경제 사회적인 상호 의존의 심화와 교류의 확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부(富)와 정보와 오염을 포함한 수많은 주요 사안들에서 국경이라는 것이 무의미하게 되어 가고 있다. 지금까지 세계와 자기 국민을 완전히 차단해온 북한마저도 점차 인민의 눈과 귀를 뜨게 하지 않을 수가 없는 형편이다.

두번째 모델은 세계화에 의한 세계의 통합전망을 부정한다. 헌팅턴은 세계에 커다란 충돌은 계속될 것이나 그것은 강대국이나 이념간의 투쟁이 아니고 서양 동양 이슬람 등 여러 가지 문명간의 충돌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 주장에 의하면 경제적 통합은 문명권을 화합시키는 대신 그들의 격차를 확대시키고 그들간의 분쟁을 격화시킨다는 것이다.

세번째, 신세계 질서의 구상은 어느 형태의 세계적 통치개념(governance)을 상정한다. 냉전 종식 이후 강대국간의 패권경쟁이 무의미하게 되고 따라서 세계의 평화와 안전의 문제에 있어 유엔 안보리와 같은 세계적 기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네번째로 상정되는 모델은 지역통합과 그에 따르는 지역간의 경쟁적 관계의 정립(鼎立)이다. 미국을 수장(首長)으로 하는 북미(北美)와, 독일을 중심으로 하는 EU, 그리고 일본과 중국이 경쟁적 리더십을 행사하는 동아시아의 세 지역은 세계의 경제와 무역의 80%를 차지하면서 특히 경제 분야에 있어서 3자간 각축전을 벌일 것으로 전망한다.

끝으로 세계가 크게 변하는 것은 사실이나 국가는 국제관계에 있어 계속 핵심적인 존재로 남아 있을 것이며 국제관계는 역시 국가를 중심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현재 유엔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과 그 외에 독일 및 일본을 포함하는 7개국은 정도와 성격의 차이는 있으나 계속 세계의 안보와 경제를 주도해 나간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위의 다섯 가지 국제질서 모델은 21세기에 몇가지가 혼합하여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다같이 전제로 삼는 것이 있다. 즉 적어도 우리가 내다볼 수 있는 앞날까지 미국이 군사적으로는 세계의 어느 지역에도 다양한 형태의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global rea

ch)을 갖는 유일 강대국의 위치를 고수할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미국은 국가간의 갈등은 물론 중동이나 북아일랜드에서의 평화협상, 보스니아나 코소보 같은 국내문제, 북한의 핵무기 및 미사일개발과 같은 대량 살상무기 비확산문제 등에 있어서 여전히 주도적인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변화하는 국제적 환경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할 것인가. 안보 면에 있어서 우리는 미국과의 유대를 유지하면서 그것을 한층 더 유기적인 동맹관계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외교 면에 있어서 우리는 앞으로 예상되는 일본과 중국간의 경쟁관계를 균형 있게 운영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다. 세계화 면에서는 유엔 등 국제기구와 협조하여 평화와 민주주의 그리고 인권 환경 기아(飢餓)문제의 해결이라는 세계 보편적 가치 추구에 적극 동참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의 국제적 위상과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 동아시아 지역협력에 적극 참여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언제 어떠한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모르는 통일을 위하여 내실을 기하고 외교적 노력을 경주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한승주(고려대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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