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National]20세기를 뒤흔든 '惡名파티 10選'

  • 입력 1999년 12월 28일 19시 47분


기억에 남는 파티라는 것은 모름지기 소란스럽고 사치스러운 파티를 말한다. 그래서 어떤 파티에 대해 신문들이 상류사회의 경박성 운운하며 얼마나 큰 소리로 혀를 찼는지가 그 파티의 성공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이런 기준을 바탕으로 지난 100년간 뉴욕에서 열렸던 파티 중에서 가장 유명하며 동시에 가장 악명 높았던 파티 10개를 뽑아보았다.

▼‘매시즈’를 위한 기금마련 파티▼

1913년. 웹스터홀 ‘매시즈’지는 급진적인 사회주의 잡지였으며 그리니치 빌리지에 뿌리를 내린 새로운 해방구의 꽃이었다. 이 잡지에 글을 기고한 사람들은 원고료를 한푼도 받지 않았지만 잡지는 여전히 자금난에 시달렸다. 파티의 입장료는 의상을 갖추고 온 사람이 1달러, 평범한 옷을 입고 온 사람이 2달러였다. 파티 참석자들은 금방 술에 취했고, 모두 옷을 벗어 던진 채 파티를 계속했다. 이 파티 덕분에 ‘매시즈’는 제1차 세계대전 초기까지 계속 발행될 수 있었다.

▼다크 타워의 개장 파티▼

1928년. 할렘 르네상스(할렘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흑인들의 문화운동)와 금주법의 전성기에 알렐리아 워커 로빈슨이라는 부유한 여성이 할렘에 있는 자신의 집을 문학 살롱 겸 회원제 식당으로 개방하면서 다크 타워라는 이름을 붙였다. 최초의 흑인 백만장자 중 하나인 C J 워커 여사의 딸인 로빈슨은 자신의 집이 작가들과 화가들을 위한 안식처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녀의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크 타워의 음식값이 비싼데다가 받아들이는 손님의 기준도 너무 엄격해서 로빈슨이 정말로 원했던 사람들에게 사실상 문을 닫아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유럽 전승기념일 파티▼

1945년 5월 7일.

독일이 항복했다는 ‘비공식적인’ 뉴스에 뉴욕시민들은 거리에서 춤을 추었다. 타임스퀘어에 면한 건물 안의 사람들은 종이를 창 밖으로 던졌고, 7번 애비뉴의 의류 거리 사람들은 천을 밖으로 던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곧 거리로 나와 자기들이 던져놓은 색색깔의 천 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런데 피오렐로 라 구아르디아 시장의 목소리가 찬물을 끼얹었다.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말라는 시장의 훈계를 들은 사람들은 무안해져서 뿔뿔이 흩어졌다.

▼‘80일간의 세계일주’개봉파티▼

1957년 10월 17일, 매디슨 스퀘어 가든. 마릴린 먼로는 코끼리를 타고 들어왔다. 파티의 여주인 역할을 맡은 사람은 엘리자베스 테일러였다. 당시 그녀의 남편이었던 마이클 토드가 이 파티의 주최자였기 때문이다. 닐 게이블러는 ‘영화 같은 인생:오락산업이 어떻게 현실을 정복했는가’라는 책에서 “마이클 토드의 파티는 1950년대의 모든 것, 즉 더 큰 것, 더 나은 것, 거대한 것을 상징했다”고 썼다.

▼트루먼 캐포티의 흑백 무도회▼

1966년 11월 28일, 플라자. ‘트루먼 캐포티’의 저자인 조지 플림프턴은 캐포티의 무도회가 정치계 고급사교계 문학계의 “세 가지 다른 세계를 한데 모은 최초의 대규모 파티였다”고 말했다. 플림프턴은 자신의 책에서 소설가 존 노올스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고 있다. “나는 마치 1788년의 베르사유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블랙 팬더스 기금 마련 파티1970년 1월 14일. 레너드 번스타인은 자신의 아파트에서 블랙 팬더스(미국 흑인 혁명정당)를 위해 개최한 작은 파티가 언론으로부터 그렇게 엄청난 풍자의 대상이 되리라고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의 파티를 비꼰 글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사교계의 과격 취미’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비앙카 재거의 생일파티▼

1978년 5월, 스튜디오 54. 이날 파티의 주제는 아기였다. 그래서 식기를 나르는 아름다운 소년들은 기저귀를 찼고, 비앙카는 아기인형 같은 드레스를 입었다. 남성 모델인 스털링 세인트 자크가 알몸에 은박을 흠뻑 칠한 모습으로 백마를 끌고 댄스 플로어에 섰고 플로어에서는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와 믹 재거가 함께 춤을 추었다.

▼솔 스타인버그의 생일파티와 말콤 포브스의 생일파티▼

1989년 8월. 포브스는 70회 생일파티 때 스코틀랜드 식 킬트를 입고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키스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그가 생일파티에 쓴 비용은 200만 달러였고, 은행가인 스타인버그의 생일파티 비용은 100만 달러였다.

▼퍼피 콥스의 29번째 생일파티▼

1998년 11월 4일, 시프리아니 월 스트리트. 평범한 래퍼이자 뛰어난 음반 제작자이며 기업가인 퍼피 콥스의 생일파티에 초대된 손님들 중에는 무하마드 알리와 사라 퍼거슨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 유명인사들은 경찰이 쳐 놓은 바리게이드 뒤에 서서 추운 날씨 속에서 파티의 시작을 기다려야 했고, 그동안 마사 스튜어트와 나오미 캠벨은 뒷문을 통해 몰래 들어갔다. 콥스 자신은 파티장에 4시간 지각했다.

(http://www.nytimes.com/library/style/weekend/122699ten-parties.html)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