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살아보니]배리 헨더슨/몸에 밴 '빨리빨리' 삶

  • 입력 1999년 12월 28일 20시 02분


장시간 비행의 피곤함과 낯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한국에 온지도 2년이 지났다. 한국에 오기 전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한국전쟁’‘김치’‘서울올림픽’‘김일성’ 등이 거의 전부였다.

나는 무용을 전공했다. ‘바디 랭기지’인 무용이 아닌 영어를 외국인들에게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지 걱정이 들었다. 처음 경남 김해시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경상도 말투를 배워 지금도 내가 한국말을 하면 모두 웃음을 터뜨린다.

나는 영국에서 교편 생활을 통해 ‘아는 척하는 것처럼 큰 바보는 없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그래서 모르는 것은 솔직히 모른다고 인정하고 다음날 자료를 찾아 알려주면 오히려 더 신뢰하는 것 같다. 영어를 가르치는 시간이 내게는 한국문화 수업시간이다. 한국인의 의식구조와 생활문화 등을 귀동냥 할 수 있는 기회여서 늘 새로운 기분이다.

나는 귀에 거슬리는 말을 많이 해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인들에게 몇가지 고언을 하고 싶다.

한국인들의 걸음걸이를 보면 지금도 깜짝 놀란다. ‘빨리 빨리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나보다는 두배 정도 빨리 걷는 것 같다. 빠른 발걸음이 부지런함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때론 성급함 때문에 타인에 대한 예의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다. 어딜 가나 사람들에게 이리 저리 떠밀리기 일쑤다. 한국인들은 익숙하겠지만 외국인들은 불쾌하게 생각한다. 나도 이런 경험이 되풀이 되면서 외출하기 싫을 때가 많다. 마치 축구 경기장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몸싸움을 하는 기분이다. 몸을 밀치거나 발을 밟았을 때 사과 한마디라도 한다면 기분이 덜 나쁠텐데 말이다.

영국에서는 쇼핑은 정말 즐거운 일 중의 하나였다. 사고 싶은 물건을 찾아 여유있게 구경을 한다. 그러나 한국에선 다른 사람이 먼저 집어갈 것처럼 서두른다. 점원들이 고객 주위에서 서성거리는 것도 불편하다. 도와주기 위해서인지 모르지만 결과는 외국인들이 물건을 사지않고 그냥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도움이 필요하면 고객이 알아서 청할텐데 말이다.

한국은 일본과 공동으로 2002년 월드컵대회를 개최한다. 양국의 문화수준이 비교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은 국제화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한국에서는 자동차를 운전할 엄두를 못낼 것 같다. 빨간 신호등 통과, 끼어들기, 교차로 주차, 과속 등 불법행위를 예사로 한다. 경찰은 뭘 하는지 모르겠다. 2002년 월드컵대회를 보러온 외국인들이 ‘한국의 도로는 무법천지’라는 인식을 갖고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이다.

한국은 이같은 부정적인 점들을 불식하고도 남을 만큼 장점이 많은 나라다. 86 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저력이 있고 특유의 친근감과 인정은 외국관광객을 매료시킬 만하다. 맛있는 음식, 경치, 상대적으로 싼 물가 등을 무기로 다른 외국인들을 감동시켜 주길 바란다.

이제 며칠 뒤면 새 밀레니엄이 시작된다. 한국이 새 시대에 걸맞는 정책과 환경을 만드는 새 출발을 할 때다. 한국은 역사는 길지만 근대역사는 선진국에 비해 짧다. 선진국의 장점을 벤치마킹해 한국의 단점을 보완한다면 한국은 발전 가능성이 무궁한 나라라고 확신한다.

배리 헨더슨(학원강사)

약력=△64년 영국 윈체스터 출생 △93년 몽포트대학 행위예술 석사 △93∼96년 버밍험에서 고교 무용교사 △97년∼현재 대한항공 파고다외국어학원 등에서 영어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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