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안철수/Y2K문제 방심 이르다

  • 입력 2000년 1월 3일 21시 16분


희망의 새천년이 밝았다. 흥분과 기대 속에서 맞이했던 새천년이 하루 이틀 지나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소망을 마음 속에 간직한 채 다시 분주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필자는 희망 반, 두려움 반으로 직원들과 함께 사무실에서 새천년을 맞이했다. 전국적으로 Y2K 비상 근무를 하고 있었던 50만명 중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 피해는 미미

아직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는 이르지만 그 동안 걱정했던 Y2K 문제는 큰 일이 발생하지 않고 지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쟁 교통마비 정전 단수 등 많은 인명을 빼앗아 가거나 큰 사회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발생할 가능성은 적어진 것이다.

물론 몇 가지 조그만 사건들이 발생했다. 아파트의 난방이 잠깐 중단되고, 병원에서 환자의 나이 계산이나 비디오 대여점의 연체료 계산에서 오류가 발생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심각한 오류라고 보기는 힘들며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 것들이다. 만약에 Y2K 문제와 관련이 없었다면 비디오 대여점의 연체료 계산 문제가 매스컴을 통해서 대대적으로 보도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국민 모두가 비디오 대여점의 문제까지 알아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Y2K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기존 소프트웨어에서 발생할 수 있는 Y2K 문제이며 둘째는 Y2K 바이러스 문제이다.

기존 소프트웨어에서 발생할 수 있는 Y2K 문제는 아무리 주의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Y2K 문제는 발생할 확률이 아무리 적더라도 피해의 규모가 엄청날 수 있고 이번만 조심하면 다시 이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적기 때문이다. Y2K 문제들 중에는 당장 나타나지 않고 숨어있는 것들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몇 달간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조그만 문제라도 찾아내서 고치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Y2K 바이러스 문제에 대해서는 전문가마다 입장이 조금씩 다르다. 필자는 작년 12월 중순에 과장 경고를 자제해야 한다는 논평을 발표한 적이 있으며 그것은 정확한 것이었음이 입증되었다. 연휴 기간동안에 신종 바이러스가 발견되었기는 했지만 평소와 비슷한 수준이었고 피해도 미미한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세계적인 바이러스 전문가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Y2K 바이러스는 사회 전 분야에 걸쳐 피해를 줄 우려가 있는 Y2K 문제와는 비교할 수 없는 미미한 수준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Y2K 바이러스의 위협에 대한 지나친 과장은 사용자의 혼란만 가중시키고 정작 심각한 문제가 닥쳤을 때 대처를 잘못하게 하는 부작용을 낳을 우려마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언론, 백신업체들에 만의 하나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철저하게 대비하는 것이 옳지만 일반에 대한 경고 수위는 위험의 정도에 따라서 조절해야 한다고 주의를 환기했다. 가능성이 높거나 또는 가능성이 낮더라도 위험성이 크다면 일반에 경고해야 하지만, 가능성이 낮고 위험성도 낮은 경우에는 일반 국민에 직접적으로 불안을 주는 행위는 자제해야 하는 것이다.

◆일부업체 상업적 악용 씁쓸

이러한 전문가들의 견해에도 불구하고 일부 업체에서는 작년 말부터 Y2K 바이러스 문제를 상업적인 호기로 여기는 상혼을 보여서 씁쓸함을 자아냈다. Y2K 바이러스 피해가 이미 심각한 정도라고 주장하면서 제품의 판매에만 열을 올린 것이다.

사회는 여러 다양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로간의 신뢰감에 바탕을 두어야만 발전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한탕주의로 사용자의 불안감을 이용하려는 태도는 종식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번 Y2K 문제들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넘어간다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 미리 합리적인 대책을 수립하는 풍토가 마련될 것이며 이러한 풍토는 다가올 정보화 사회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는 든든한 밑바탕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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